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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식탁 위의 미생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독서블로그123 202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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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미생물

언젠가 누군가의 권유로 한 점 집어 먹었다가 기겁을 했던 무서운(?) 추억의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삭힌 홍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삭힌 홍어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머릿속마저 혼미케 만드는 그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향과 풍미는 먹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나의 미각과 후각에 고통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러나 이 삭힌 홍어는 매우 귀한 음식 중 하나며 건강에 이로운 유익균이 많은 음식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삭힌 홍어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발효라는 독특한 조리법에 있다. <식탁 위의 미생물>이라는 독특한 책의 제목을 보며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발효라는 전통적인 조리법에 의해서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을 배양했다.

 

저자인 '캐서린 하먼 커리지'는 과학 전문기자로서 음식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설명한다. 미생물 군집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내에 서식하는 미생물 및 유전 정보 전체를 일컫는다. 책은 인간의 장에 서식하는 유익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그 유익균들을 공급하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먹는 일상의 음식 속에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너무나 무관심하게 먹고 마셨던 우리의 음식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인간의 장까지 내려가서 서식하며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 끊임없이 좋은 식량을 공급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제품과 채소, 과일, 곡물, 콩류와 씨앗, 육류 등 모든 것이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서 인체 내 마이크로바이옴에 유용한 식량이 되어 줄 수 있다. 불과 20~30여 년 전만 해도 인간의 장내 유산균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풍부했고, 건강했다.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더 불결한 조리법과 조리환경 속에서 음식이 만들어졌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너무나 청결하고 깨끗한 환경과 시설을 갖추고 까다로운 레시피를 통해 음식을 만들지만 인간의 장 건강은 예전만치 못하다. 책장을 넘기며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조금 더럽고 불결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이 오히려 인간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위해서는 득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요리하는 사람의 손에 묻어있는 미생물이 음식 조리 과정 중에 들어가서 더 유익이 된다는 내용을 보며 음식 맛은 손맛이라는 옛 어른들의 경구가 뭔가 허투루 들을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한다.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요거트, 김치, 치즈, 오이피클, 낫토, 맥주, 코코아, 소시지 등 전 세계의 다양한 발효 음식들을 찾아 떠나는 음식 기행의 기록이 흥미롭다. 발효에 의한 음식의 재탄생을 보며 이러한 음식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보고서가 눈을 의심케 만든다. 건강한 미생물이 함유된 음식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들어보았는가? 장내 유익균이 인간의 대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우울증 발병 여부에 연관된다는 이 믿기지 않는 보고를 읽으며 다시금 매일 우리의 식탁에서 만나는 유익균 덩어리인 김치 한 조각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게 된다. 한편 좀 역겨운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대변이 약으로 쓰인다는 혐오스러운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심한 장 질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했더니 완치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는 장내 유익균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렇듯 다양한 발효음식에 관한 연구의 흥미로운 과학적 결과와 더불어 저자가 발효 음식을 찾아다니며 만난 음식들의 깨알 레시피를 책의 곳곳에 첨부해놓았다는 점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보너스이다.

 

코로나라는 몹쓸 바이러스는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유익한 박테리아와 미생물들은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선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고마운 존재들로 전자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책을 덮으며 식탁에서 큰 의미 없이 단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허겁지겁 음식을 떠넘겼던 그간의 무심한 식습관이 떠오른다. 더불어 어린 시절 식탁에 매일같이 올라오던 각종 김치의 향연을 보며 어머니께 반찬투정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그 음식들이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 음식들이었는지를 깨달을수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수가 없다. 피자, 치킨, 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 정크푸드의 홍수 속에서 오늘 저녁만큼은 구수한 된장찌개와 시큼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밥에 얹어 먹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삶의 양태가 다양해지면서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으며 누리고 싶은 것도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만 해도 먹고사는 삶의 모습들이 대동소이했기에 특별히 남들보다 더 가지고 싶었던 것도 별로 없고, 더 소유 하고 싶었던 것도 딱히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욕구를 자극하는 물질문명이 양산해낸 수많은 소유의 대상물들이 우리네 삶에 있어서 가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그 허탈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은 미친듯한 갈망함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욕망과 갈급함이 어디 가시적인 재화에만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향해 느끼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은 위에서 열거한 눈에 보이는 재화의 소유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며 이것은 오히려 그러한 재화의 소유를 향한 욕망을 천박한 인간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전락시켜버리곤 한다.

 

이러한 순수한 사랑, 특별히 소유할 수 없는 영혼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낸 비극 한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우스트>라는 대작으로 유명한 독일의 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지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18세기 중반 독일에서 태어난 괴테는 독일이 낳은 천재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 수많은 작품을 썼지만 이 책은 <파우스트>와 더불어 괴테의 명성을 세상에 알린 탁월한 저작 중 한 권이다.

 

책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변호사로서 작은 시골마을에 부임하여 그곳에서 '샤를로테'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순식간에 베르테르의 영혼을 휘감아버릴 정도의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자태의 '로테'를 본 이후 베르테르의 마음속에는 온통 로테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연모의 감정만이 가득 찼다. 그러나 비극적인 사실은 그를 단 한 번에 사랑이라는 용광로 속으로 몰아넣은 순수한 영혼 로테에게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

 

이후 너무나 신사적이고 품위 있는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에게 친구가 되어주지만 그러한 알베르트의 친절과 자신을 향한 우정이 베르테르에게는 더욱더 참기 힘든 고문과 같은 경험으로 돌아온다.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끓는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의 심리는 소설 속 자신의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챕터를 통해 저자인 괴테는 편지 형식을 빌려 사랑하는 여인 로테를 향한 그의 순수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대한 원망과 애절한 감정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로테의 연인이자 동시에 친구이며 자신에게 너무나도 친절한 알베르트에 대한 존경과 함께 그의 연인 로테를 그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연적을 향한 질투 어린 심리묘사가 세밀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는 한편의 서정시가 애틋함을 드러낸다.

 

참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 사랑을 차지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 속에서 고뇌하는 청춘의 그 순수한 열병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상상하기도 싫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놀랄만한 사실은 이 책의 내용 상당수가 저자인 괴테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의 나이 23세 되는 해 참석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샤를로테'(소설 속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다)를 보고 한눈에 반한 괴테는 사랑의 열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친구 '케스트너'의 연인이라는 사실에 크나큰 좌절을 맛보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또 다른 친구가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낙담하여 권총 자살 한 사건을 자신의 개인적 아픔과 결합하여 본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시켰다. 그렇기에 어쩌면 괴테는 소설 속 베르테르라는 인물의 내면 속에 자신의 그 이루어질 수 없었던 한(恨) 서린 응축된 감정을 투영시키고 녹여낼 수 있었으리라.

 

당시 이 작품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 발표되자 수많은 청춘들에게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더불어 이 소설의 네거티브한 영향력은 소설 속 베르테르의 최후를 동경하며 감정이입시킨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현상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이후 자신들이 동경하는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이 자살을 할 때 열혈팬들이 따라서 목숨을 끊는 현상을 가리켜 '베르테르 효과'라는 사회학적 용어가 탄생하게 된다. 더불어 불붙는 듯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타는 갈망, 현실과 관습이라는 냉혹한 괴리감 앞에서 좌절하는 한 청춘의 비극적인 스토리가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모티브로 탄생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진 의미를 단지 청춘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단장(斷腸)의 러브스토리에 한정시키고 싶지는 않다. 당시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라는 인간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인간성이 극도로 고양된 시기에 있었다. 중세 유럽을 누르고 있던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모든 요소에 대한 반발과 반동 작용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인간 이성의 무한 신뢰라는 계몽주의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탄생한 본서가 가지는 내재적 의미는 사랑마저도 차갑고 냉철한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조율될 수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인간 이성이 작동했다면 자살을 할 것이 아니라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한 사람의 평범한 독자로서 내가 느낀 바는 소설 속 베르테르의 비극적 선택은 인간 이성을 무한 신뢰하는 계몽주의 사조의 극대화라는 점이다. 중세 교회의 가르침 속에 있었던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 중의 죄악이었다. 그것은 베르테르의 자살과 그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하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러한 종교적 관습의 테두리 속에서 자살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는 자살을 선택한다. 보이지 않는 신(神)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지을 수 있다는 계몽주의 사상의 극대화를 괴테는 자신의 소설 속에 차분하게 내면화시켰고 아름답게(?) 녹여냈다. 괴테라는 인물이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남긴 문인임과 동시에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사랑했던 철학자였기에 가능했을 작품상의 귀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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