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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죄 용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삶, 칼의 노래

by 독서블로그123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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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용서

본서는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의 실천적 저서 가운데 또 다른 저작이다. 시편 130편을 본문으로 죄용서라는 신자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신앙적 주제를 탁월한 신학적 식견과 통찰로 풀어내고 있다. 당시 신자의 구원에 대한 불확실성을 강조한 로마 카톨릭의 주장과 신자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신학적 공격에 맞서 택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변개되거나 잃어버릴 수 없으며 끝까지 그 구원의 은혜를 통한 견인이 제공된다는 정통 개혁주의의 가르침을 수호하기 위한 필요들이 대두되었고, 본서는 이러한 신학적 혼돈과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되었다.

 

저자인 오웬은 시편 130편을 통해 크게 영혼이 느끼는 절망의 깊은 곳은 무엇이며 신자의 영혼 안에 내재하는 죄, 복음적 용서의 본질과 중심, 죄 용서의 확신을 위한 실천적 제언을 기술한다. 신자의 영혼은 죄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의 심연 속에서 갈바를 알지 못하며 구원을 소유했다고 믿지만 마귀와 내재하는 죄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와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린 채 유리방황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혼에게 진정한 복음적 용서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자비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드러난다는 진리의 말씀은 죽어가는 영혼을 소생케하는 생기와 같다.

 

그렇다면 신자의 진정한 죄 용서와 구원에 대한 굳건한 확신은 어디로부터 오고 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해 저자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만이 죄로 말미암은 죄책에 빠져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상황 속에 자신을 던져넣는 연악한 신자들에게 필요한 특효약임을 주장하며 처방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죄 용서는 인간 자신의 노력과 공로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 교황주의자들의 사악한 주장들이 난무하던 시대 상황 속에서 본서는 신학적 논쟁을 위한 목적보다는 영적인 고민과 고통속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신자들의 신앙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목적의 목회적이고 목양적 관점에서 쓰여진 매우 따뜻한 책이다.

 

죄 용서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그분의 말씀과 약속으로 확증되어지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표현되어지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 안에서 비로소 택함 받은 신자에게 있어 죄 용서는 실제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혼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을 소유했지만 날마다 내 영혼의 내면 안에 내재하는 죄의 유혹과 투쟁, 그리고 넘어짐은 항상 주님 안에서 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의지할 수 밖에 없도록 이끈다. 본서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유익은 날마다 쓰러지고 실패하며 낙심하는 인생 속에서 죄책과 정죄감이 아닌 주님 안에서 신자로서의 죄 용서의 확신과 구원하심을 기대하고 의지하며 자녀로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다시 싸울 힘을 얻고 우리의 달려갈 길을 최선을 다해 경주할 수 있도록 돕기에 본서가 지니는 가치와 무게감은 실로 다른 어떠한 조언과 가르침보다 더 묵직하다.

 

570여 페이지의 다소 분량이 있지만 죄 용서의 본질에 대해서 본서와 같이 세밀하게 기술된 책이 드물것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잘 쓰여진 수작이다.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본서는 시편 130편 강해를 중심으로 엮었기에 그 전에 읽었던 존 오웬의 성화론과 관련된 몇권의 책들과는 달리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고, 이해도 쉽다. 그렇기에 독자들에게 있어 분량에 겁 먹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존 오웬의 저작 가운데 총 5개의 시리즈 중 실천적 저서 시리즈는 현재 국내에 7권까지 번역되어 완간이 되었다. 죽기 전에 나머지 4개의 시리즈 전권이 번역되어 만나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이런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읽고, 내 서가에 들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이 지금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남다름을 느낀다. 죄악이 관영한 세대 속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신자로서 바른 삶을 견지하기 위해 죄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이다. 더이상 우리는 교회 주일 오전예배 강단에서 죄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무서운 경책,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어지는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지 않다. 대신 듣기 좋은 달콤한 축복과 부드러운 은혜의 설교만이 신자들의 귀를 간지럽힌다. 그렇기에 죄에 대한 경각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본서에서 저자는 아무리 꾸미려고 해도 각성이 없는 곳에는 용서에 대한 믿음도 없다고 말한다. 덧붙여 어떤 사람도 죄에 대해 혐오하고 버리지 않으면서 죄에 대한 용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저지르고 있는 죄에 대한 혐오와 돌이킴의 과정 없이 어찌 죄 용서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죄와 용서의 본질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길 원하는 신자된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필독서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삶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친구와 같은 사귐을 갖는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어찌보면 참으로 불경스러운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은 이미 한국 개신교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플로이드 맥클랑 목사의 저서이다. 태초부터 당신의 계획 가운데 우리의 존재가 있었고, 어느 한순간도 우리에게 눈을 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이 책 곳곳에 따뜻함으로 녹아져 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목을 허락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양자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과의 친밀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오해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하나님은 내가 선한 일을 하면 칭찬하시고, 그렇지 못하면 채찍을 가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후려치는 그렇게 매정하고 무서운 분인가? 물론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위와 같은 잘못된 이미지를 가짐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함 가운데 들어가지 못하고 관계의 언저리를 맴돈다. 본서를 통해 저자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성경적 의미를 밝히고, 그 친밀함 속에 거하기 위한 방법과 그 친밀함이 가져다주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언급한다.

 

우리를 리스트에 실린 품목이나 처리해야 할 안건이 아닌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딸로서 대하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와 삶을 원하신다. 우리가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갈망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타는 갈급함이 하나님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있다면 믿겠는가? 또한 저자는 우리의 진짜 정체성과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들,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귀기울시는 친구와 같은 하나님의 모습들을 세밀하고 따뜻한 필치로 기록한다. 책의 마지막 장은 그러한 주님의 음성을 친밀하게 들을 수 있는 방법들로 구성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삶에 기초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개혁주의권이 아닌 일반적인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좋아하는 몇명의 저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플로이드 맥클랑의 책들을 빼놓을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주제는 그의 단골 이야기거리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이야기하는 그의 책은 언제나 따뜻하다. 책을 덮을 때는 항상 주님과 더 친밀해지고자 하는 거룩한 욕심을 불러 일으킨다.

 

신학적인 내용은 없다. 어쩌면 오히려 조금은 신비주의적 냄새가 날 수도 있다. 특별히 책을 통해 기억에 남는 내용은 저자가 역시 개인적으로 내가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 라는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선교단체에서 사역했던 사람답게 하나님의 친밀함을 하나님의 음성 듣는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마무리 짓는 마지막 챕터의 내용이다. 저자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라는 제목의 마지막장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원하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대해 설명한다. 소위 직통계시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배제하지 않기에 끝까지 읽게 된다. 요약하면 나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겸손히 기도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잠잠히 기다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또는 뜻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확신을 성경과 주변의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통해 확인하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사모하는 삶의 행태야말로 모든 경건한 신자들에게 있어서 동일하게 품는 삶의 바램일 것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고 그 분 앞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이며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 나는 나의 이웃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할 때 한번 쯤 가볍게 읽어볼만한 라이트한 신앙도서다. 더불어 뭔가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사역하며 뛰고 있지만 허전함과 공허함이 있는가?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을 위한 사역보다 단지 주님 앞에 머물러 않아서 주님과의 개인적인 사랑과 친밀함을 즐기기를 권고한다. 또한 저자는 삶의 안정감이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나 업적, 성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고 그분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때 가능한 일임을 덧붙인다. 코로나19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시국에 어쩌면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삶의 진정한 안정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삶일 것이며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요구에 대한 작은 신앙적 tip을 제공해준다.

 

칼의 노래

오래 전 주말 저녁 TV로 방영했던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명량' 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다. 한국인에게있어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누구나가 다 아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였기에 큰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어린시절 위인전으로 충분히 접했던 이야기라서 그런지 드라마가 내게는 별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찮게 TV 앞에 앉았다가 보게 된 드라마의 재미에 완전히 함몰되었다. 그러면서 드라마의 원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가 두 편의 원작을 토대로 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두 편의 원작 중에서 <칼의 노래>를 구입해서 읽었다.

 

드라마는 감칠맛나는 묘미를 이어가기 위해서 중요한 순간에 끊어버리는 단점을 가진다. 그래서 나의 인내심 없는 성격 덕분에 나는 급기야 원작을 구입해서 읽었다. 책을 붙잡고 읽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빠져들었고 거침없이 읽어갔다. 책의 내용은 드라마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가진다. 책은 성웅 이순신 장군의 눈으로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보고 쏟아내는 1인칭 자전적 소설의 구조를 택한다.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의 세밀한 심리 묘사와 내적 고뇌의 흔적들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렇기에 책을 펼쳐 든 독자는 마치 장군의 곁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문학적 현장감을 체감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소설책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인간의 비릿한 콧김이 서리지 않은 허구적인 것이 싫어서라는 지독한 편견 때문에 그런지 애써 소설이라는 장르를 나의 서가에서 밀쳐낸 지 오래다. 그런데 TV 드라마를 통해 본서를 만난 순간 내가 그토록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편견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픽션의 요소가 적지 않게 가미되었지만 역사라는 팩트에 기반한 소설이기에 사실성은 물론이거니와 독자를 끌어들이는 그 재미와 마성의 몰입감이 마치 물귀신의 그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점은 작가인 김훈에 의해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지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현란한 글사위와 수려한 글놀림의 향연이었다. 그의 글은 마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기암절벽의 장관을 보는 것과 같아 독자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만드는 저릿함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또한 느껴진다. 본서를 향해 한국 문학계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라고 말하는데 책을 펼쳐든 순간 글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진정한 수작 중의 수작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책 자체가 가지는 아우라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더불어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우리 글이 이렇게 화려하면서도 담백하며 깊은 느낌의 문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가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해주는 덤이다.

 

나로 하여금 작가의 이력을 검색하게 만든 책! 작가 김훈...<칼의 노래>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글은 원색적이고 감각적이다. 400여년 전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한 문장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묻어 나오는 마치 기예와 같은 글놀림으로 인해서 피비린내와 물비린내가 진동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끈적대며 살아 있는 듯 징그러울 정도로 몸서리쳐진다. 장군의 눈 앞에 펼쳐진 바다에 떠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귀떼와 같은 적들(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혼들이다. 아니 도리어 죽음을 즐기는 자들이라고 표현된다)과 자신의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임금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인한 진퇴양난의 인간적 고뇌들, 그리고 소리없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러나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자신의 잃어버린 의지, 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처럼 위기에 빠진 조국의 운명을 홀로 지고가야만 하는 몸이 바스라지는 듯한 책임감과 억눌러오는 부담감, 그리고 자신의 사지가 찟겨져 나가는 듯한 현재적 고통을 경험케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들...이 책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더욱더 큰 매력을 느낀다. 인간 냄새 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표현한 작가는 그가 냉철한 군인이기에 앞서 그의 몸 안에도 따뜻한 피와 물이 흐르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수고를 마다 않는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난세에 탁월하게 준비된 리더에 의해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발견하는 희열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표본이 400여년 전 우리의 조상인 이순신 장군이라는 사실은 새삼 장군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이순신이라는 민족 영웅을 본서보다 더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묘사한 책이 또 있을까싶다. 장군의 마음 속 심연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마냥 작가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세밀하다. 400여년 전 장군의 환생을 보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마치 글을 쓰는 동안 이순신 장군의 영혼이 작가에게 빙의된 듯한 섬찟한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지금껏 다수의 책을 읽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글을 가지고 논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김훈 작가는 본서를 펼쳐든 순간 "아! 글 자체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글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유일한 작가다.

 

책을 펼쳐들면 간결하고 정제된 어휘와 극도로 절제된 문장 하나 하나가 내뿜는 문학적 포스가 예사롭지 않음을 대번 느낄 수 있다. 선 굵은 문장의 마디마디가 마치 오랜 세월 노질로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히고, 뼈마디가 기형적으로 굵어진 뱃사공의 그것과 같이 투박스럽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첫날 밤 새색시의 수줍음과 같이 여리고 여린 처녀성의 순결함을 머금는다. 나는 글을 너무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솔직히 질투어린 짜증이 난다.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안되는 김훈 작가의 글을 읽고 느낀 나의 첫 감정이 그랬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존경을 표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더 이상의 미사여구가 필요없는 그야말로 한국 문학계에 쏟아진 벼락같은 축복!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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