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하나님
저자인 '샌드라 윌슨'은 상담심리학 박사로서 책을 집필할 당시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객원 교수였다. 본서는 책의 제목만을 볼 때 마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 같지만 내용은 관계의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물론 그 근본적 솔루션은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분과의 관계임을 말한다. 책을 펼쳐들고 읽으며 오랜만에 너무나 속 시원한 해답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관계의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유기(버림받고 거절당하는 것)와 육제적 유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마음 깊은 내면에 거절감의 쓴뿌리가 자리 잡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영적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형상을 왜곡시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데에 큰 장애물로 다가온다.
교회 안에서 사회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이유없는 거절과 반목을 경험함으로 유기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버지의 사랑안에서만 모든 유기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본인이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에게 유기를 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상담하는 사역을 행하면서 얻은 지식과 사례를 공개하기에 책의 내용은 전혀 학문적이거나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필치로서 기술되어져 있다.
책의 내용은 우리네 삶에서 실제적으로 만나게 되는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실제적이다. 읽는내내 몇번을 동의하며 읽은 줄 모른다. 그중에서 아래에 몇가지 매우 실제적인 내용들을 소개해본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면을 쓰고 관계에 임한다고 말한다. 가면이 크고 두꺼울수록 더더욱 고독한 타인으로 남게 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안정된 소속감을 갖기 원하며 남들이 자기를 온전히 알아주고 깊이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른 이들의 부탁이나 의견에 대해서 'No!' 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는 항상 'Yes맨' 이 되어야만 사람들과 공동체에서 용납되어지고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관계지향적인 '관계주의자'들이라고 칭한다. 이들은 소외감을 가장 두려워하며 이들의 안정감의 근원은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구하고, 그렇기에 거절을 하지 못한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인정이다.
현대인들 중에는 바로 이러한 관계주의자들이 많다. 특별히 스마트폰과 SNS가 지금의 세대를 대변하는 이 첨단 문명의 시대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을 SNS에 업로드한 후 하루에도 수십번씩 폰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쓴 게시물에 좋아요와 댓글이 몇개나 달렸는지를 병적으로 집착하듯 확인한다. 이것은 바로 현대인들이 가진 내면의 공허함을 반증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의 좋아요와 댓글이라는 인정을 갈구하며 많은 수의 피드백 속에서 깊은 안정감을 누린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몇일이 지나지 못해서 쉽게 고갈되어져 버리고, 또 다시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며 SNS를 기웃댄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팠지만 그것은 물을 가두어 둘 수 없는 터진 웅덩이일 뿐이라고 말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인간 관계가 가져다두는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하는 관계주의자들과 대조하여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업적주의자' 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므로 인간 관계에서 아예 처음부터 보호막을 치고 관계한다. 모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냥 피상적으로 좋은 인상만 주면 되기에 친절하게 대하고, 좋은 말만 한다. 마치 요즘 아이들의 시쳇말로 '영혼 없는 대화와 피드백'이 그들의 일상의 모습이다. 업적주의자들은 관계가 틀어졌을 때 받는 고통이 너무나 싫기에 친밀한 우정을 쌓는 것을 회피하고 항상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한다. 두꺼운 가면과 보호막 뒤에 숨어서 오로지 자신이 이룬 과업과 업적을 통해서만 사람들에게 유능한 사람이라고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직 인생의 성공이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바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관계주의자와 업적주의자의 가면 두개를 모두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마치 폭식증 환자와 거식증 환자가 음식을 갈망함과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사회 생활을 해오고 있고, 특별히 개신교 신앙을 갖고 교회를 출석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 또한 내 스스로가 관계주의자이면서 어느 정도 업적주의자의 요소를 가진 사람임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관계주의자들 또는 업적주의자의 특징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왜 내가 그때 그 상황에서 그렇게밖에 반응할 수 없었을까에 대한 고민들을 뒤늦게 하면서 그래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여전히 병적 반응들이 남아 있다.
이 책의 탁월함은 이렇게 문제 요소들만을 한가득 제시하고 해결책은 당신들이 알아서 찾으시오! 라고 무책임하게 던져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가진 이 수치와 유기의 문제에 대해서 근원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섯번이나 남편을 바꾼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찾아가신 후 그 여인의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목마름이 결코 인간적인 정욕으로 채워질 수 없음을 이야기하신 것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수 많은 SNS와 인간 관계를 통한 인정은 터진 웅덩이로서 근원적인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 저자는 오직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 내면의 수치와 유기로 인한 갈증이 해결될 수 있음을 말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아버지 되시는 '아바 하나님' 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나의 진정한 삶의 안정감은 오직 아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을 통해서만 충족되어진다. 하나님과의 깊고 깊은 관계 속에 있을 때 비로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결점과 허물을 용납하고 그들에게서 어떠한 인정을 바라지 않고도 그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이 우리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고, 우리 또한 그들을 채워줄 수 없는 존재들임을 사실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어진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튼튼한 항구에 굵은 밧줄로 매어져 있는 배들은 흔들림은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항구로부터 이탈되어 바다로 떠밀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거센 폭풍우 속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배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저자는 목적의식을 갖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영적으로 관계적으로 풍성히 채워주실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반석과 항구에 붙들린 신자는 더 이상 SNS를 통한 사람들의 싸구려 인정에 목말라 하지 않게 되고, 사람들의 칭찬과 피드백을 갈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고민하는 문제의 해답을 너무나 많이 얻을 수 있었기에 책의 내용은 나에게만큼은 굉장히 실제적이었다. 책을 읽던 당시 교회 안에서의 관계의 어려움, 특별히 내가 잘못한 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유없는 거절과 존재의 무시를 당할 때(그것도 같은 동료 신자에게)의 혼란스러움과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르고 쩔쩔매며 고민했던 관계의 문제들에 대한 너무나 속 시원한 처방이 내가 이 책을 나의 서가에 지금까지 한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든 이유였다. 리뷰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저자는 아바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가면서 그분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치유 되어야할 필요성을 다양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제시한다. 독자는 책의 조언을 통해 놓치고 있었던 우선순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자신을 거절하고 무시함으로 유기의 상처를 느끼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더 높은 차원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안정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제명령
간혹 일부 교회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문제로 인해 세간의 지탄을 받는 일이 종종 뉴스의 한면을 장식하곤 한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을 섬기는데에 아낌없이 사용하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르침을 가르침대로 따르지 못하는 현실이 엄연한 팩트이다. 그러나 비단 이러한 탐욕의 문제가 모든 개신교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섣불리 비난하는 것도 문제다. 가진 것은 얼마 없지만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내어놓았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으로 증명해보이고 있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고 이 책은 바로 이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은 YWAM이라는 국제 선교단체를 모체로한 구제선 사역인 Mercy Ships(머시쉽)사역에 대한 생생한 현장 보고서이다. 저자인 '돈 스티븐' 은 머시쉽의 대표로서 자신들의 삶을 헌신하여 배 안에서 생활하며 전세계 병들고 굶주린 나라의 사람들을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감동적인 필치로 소개한다. 머시쉽은 1978년 시작된 사역이다. 가난과 질병, 기아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의료와 식량, 농업, 건축, 위생 기술 전수 등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이 사역의 독특한 특징은 배(ship)가 사역의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최신 의료시설을 갖춘 선박을 이용하여 의료 인프라가 전무한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을 찾아가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돕고 있는 사역의 영감과 아이디어가 놀랍다. 배 안에는 월급을 받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생활비를 스스로가 책임지면서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10년, 20년씩 선상 생활을 하며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40여개국에서 온 언어와 인종이 다른 선교사들이 승선하고 있다. 그들의 직업도 가지각색이다. 의사(성형, 정형, 치과, 안과 등)들과 간호사, 물리치료사, 의지보조기 제작자와 같은 의료진들과 실제적으로 배의 운항을 책임지고 있는 항해사들과 선박 관련 기술자들, 배의 여러가지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직종의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다채롭다.
책은 머시쉽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 세상을 향한 깨어진 마음들을 배울 수 있는 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머시쉽 사역은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품고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빵과 복음으로 대변되는 양손복음으로 섬기는 뜻깊은 사역이다. 그렇기에 그 사역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움과 기쁨을 감출 수 없다. 머시쉽에서 말하는 양손복음(Two hands of Gospel)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원하는 세상의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제명령의 한 표현이다.
책의 저자는 사회적, 인종적, 경제적인 상태와 신분에 상관없이 아무도 가치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며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들이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매일 3만명의 아이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기본적인 위생시설의 결핍으로 죽어간다. 1만명의 사람들이 간단한 예방주사를 맞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으며 매년 3만 5천명이 기아로 굶어죽는다. TV를 켜면 케이블 TV에서 너무나 흔하게 흘러나오는 공익성 광고를 통해 우리는 이제 이러한 수치에 대해 어느 순간 감정의 무뎌짐을 경험하고 있다. 결코 놀랍지도 않은 이러한 통계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
본서는 이러한 물음 앞에 자신들의 삶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책장을 넘기며 나의 마음에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 한 문장이 있다. "가난한 자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은 마치 우리의 영혼에게 거울과 같다. 그들에게 우리가 반응하는 태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삶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다."
작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주님께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이야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당장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학업을 접고 가정을 내팽겨쳐놓고 이 배를 타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럴수도 없다. 그러나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헌신된 영적 삶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우리의 관심이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이 머시쉽 사역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20년이다. 물론 나는 배를 탄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한명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들의 삶으로 하나님의 구제명령에 신실하게 응답해보이는 이들의 삶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부러웠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마음으로 함께했다. 가진 것의 적고 많음이 중요하지 않음을 이들의 삶을 보면서 느낀다. 그냥 움켜쥔 것을 내어드리면 된다. 그러면 열매는 그분이 맺으신다는 것을 20년간 곁에서 보아왔다. 너무나 오래 전 떨리는 마음으로 읽었던 책을 다시금 꺼내보며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동안 아프리카와 태평양, 대서양의 흰물살을 가르며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찾아다녔던 몇척의 배가 벌써 퇴역했고, 이제 또 새로운 배가 바통을 이어받아 취역을 기다리는 중이다. 책을 덮으며 독자가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제명령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모든 신자들이 응답해야 할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명령이다.
글래디스 에일워드
믿음의 영웅들 시리즈 8번째 주인공은 영국의 가정부 출신 여선교사 '글래디스 에일워드' 이다. 1900년대 초, 배운 지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글래디스 에일워드' 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된다. 그녀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곳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14살 때 학교를 그만 둔 이후 배운 지식도 별로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그녀를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회에서 선교사로서 쉽게 받아줄리는 만무했다. 뻔한 결과였지만 그녀는 중국 내지선교회로부터 성경공부 성적 미달로 해외선교사 파송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분명 자신을 중국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길이 막히는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글래디스는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부르심을 알았기에 열심히 가정부로 일하면서 중국으로 갈 여비를 마련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마침내 여비를 마련하고 배가 아닌 기차를 통해 당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이 극심한 전쟁터를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의 몸으로 갖은 고생 끝에 통과하며 마침내 중국 양청 지방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벌써부터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로슨 부인을 만나 함께 사역을 시작하지만 이후 연로한 로슨 부인은 글래디스만을 머나먼 이국땅에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 서양귀신이라고 불리워지는 수모를 받으며 글래디스는 차츰 중국인들의 문화와 삶 속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양청 방언을 배우고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토착화 되어감으로서 그 땅에 복음을 심으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차근차근 실행해간다.
글래디스의 사역 중 눈에 띄는 일은 존슨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지역의 관리인 만다린으로부터 전족 검열관이라는 직책과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난징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새 정부는 중국의 악습 중 하나인 '전족' 을 폐지하라는 규정을 제정했다. 마을마다 다니면서 여성들이 전족을 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검열하며 중국인 여성들을 만나서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는 희망하에 그녀는 전족 검열관이라는 직책을 수락한다. 그리고 중국의 여아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다 준 전족을 폐지하는데 있어서 글래디스는 크나큰 성과를 거둔다.
그러던 어느 날 양청 지방 교도소내에서 폭동이 발생한다. 죄수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수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누구하나 감옥 내로 들어가 폭동 진압하기를 꺼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전족 검열관인 글래디스에게 찾아가 교도소 폭동을 잠재워달라고 부탁한다. 당신과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폭동을 진압할 수 있지 않겠냐는 그들의 요구에 글래디스는 두려운 마음을 뒤로한채 담대하게 교도소로 들어가 피칠갑 된 광경 속에서 칼을 들고 글래디스에게 다가오는 살인자에게 단호하고 무섭게 명령한다. "그만! 당장 칼을 내려놓으세요! 거역할 수 없는 위엄 앞에 살기등등했던 남자는 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잠시 후 폭동은 사라지고 교도소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 사건 이후 피부색깔이 다른 서양인으로서 중국인들과 함께 갈등을 풀어나가며 어느 새 글래디스는 그 지역에서 덕이 높고 고결한 사람이라는 '아이워이다' 라는 칭호까지 듣게 된다.
이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그녀는 전쟁으로 인한 고아들을 한명 두명씩 데려다가 그들을 복음과 사랑으로 키우게 되지만 전쟁의 포화로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죽을 고생을 하며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피난민 거처가 일본군에 의해 유린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고 이후에는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과의 내전을 겪으며 자신의 눈 앞에서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기독 학생들 200여명의 목이 잘리는 끔찍한 장면을 목도해야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처녀의 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만을 좇아서 백발이 되고 숨을 거둘때까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던 중국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했던 글래디스 에일워드 선교사의 헌신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기쁨을 갖게 되었다.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단순하게 순종하는 삶이 다른이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세상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는 일인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기에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삶을 볼 때 한낱 핑계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야말로 가진 것 하나 없고, 배운 것도 변변찮았던 영국인 가정부 출신의 미혼 여선교사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헌신적 삶은 다시한번 멈춰진 우리의 부르심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