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의 지배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의 실천적 저서 시리즈 가운데 한권인 본서는 죄가 인간 내면 가운데 어떠한 모습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인간의 영혼을 노략질 하기 위해서 그 능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회심을 통해서 구원함을 받은 신자나 그렇지 않은 불신자이거나 상관없이 죄는 인간의 내면과 영혼 가운데서 그 본질적인 죄의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인류가 시작된 이후 끊임없이 도발해왔다. 인간을 향한 죄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공격은 마침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 종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다. 더불어 믿음을 지닌 신자들의 삶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더 경각심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구원함을 받는 신자들이 결코 낙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죄의 지배에 반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음의 은혜 또한 신자들의 내면과 영혼 가운데서 그 죄의 영향력을 몰아내고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말하면 율법이 결코 행할 수 없는 죄의 지배력에 대한 명확하고 확고한 차단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능력 밖에 없음을 자각하고 그 앞에 나아가 그 복음의 은혜가 주는 능력으로 신자의 삶이 거룩함을 향해 치열한 싸움을 행해야 한다는 오웬의 가르침은 한번 구원 받으면 우리의 영혼이 모든 죄로 부터 완전한 해방을 받은 것이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영적인 무장을 해제해버리는 적지 않은 수의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으로 다가온다.
존 오웬의 대표적 저작인 '죄 죽임'은 신자 안에 있는 죄를 죽이는 일에 있어서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이었다면 본서는 죄의 작용과 죄가 신자에게 미치는 영향, 은혜와 다투는 죄의 역동성 그리고 처방을 다룬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용상으로 볼 때는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구원 받은 신자의 삶은 코에서 호흡이 끊어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이 땅에서 계속적인 죄와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자의 영혼에 위로와 격려가 되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 또한 신자의 영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은혜의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신자의 영혼 안에서 날마다 죄와 은혜가 개별 신자 영혼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줄다리기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독자가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죄이든 은혜이든 모두다 신자의 영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신자 본인 스스로의 순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신자의 생각(사고)과 의지에 가해지는 욕망의 힘은 신자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향을 약화시킴으로서 죄악된 삶의 행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반면 하나님의 은혜는 신자의 사고와 의지에 가해진 욕망의 찌꺼기를 말씀의 능력으로 정화시키고 죄의 경향성들을 약화시킴으로서 신자의 영혼 안에서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성향이 자라나도록 이끈다. 이렇게 신자의 영혼 안에서는 죄와 은혜가 마치 시계 추와 같이 진자운동을 일으키며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그래서 신자의 내면과 영혼이 죄의 지배를 받게 되면 몇일 전까지 그렇게 은혜 받았다고 만면에 미소를 짓고 세상을 다 갖은 듯 행복하게 신앙생활 했던 신자가 하루 아침에 갖은 타락과 방종의 삶으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면 죄악으로 만신창이가 된 신자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그 은혜의 희미한 빛줄기를 움켜잡고 자신의 의지를 드려 순종하는 신자들이 다시금 죄악 속에서 거룩한 신자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또한 죄를 내어쫓는 은혜의 지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신자의 의지가 무엇에 순종할 것인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죄를 선택함으로서 우리의 영혼의 문을 죄에게 열어줄 것인지 아니면 은혜를 선택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선택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의 결정은 신자 개인에게 달린 문제이다.
오웬은 이야기한다. 죄의 지배는 신자든 불신자든 우리가 이땅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의 영혼 안에서 계속되는 싸움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특별히 신자의 영혼과 내면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서 결코 죄에게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그 죄의 영향력을 끊어버리고 승리할 것임을 말이다. 영혼을 차지하기 위한 죄와 은혜의 싸움에 대한 귀중한 진리를 맛보기에 본서는 너무나 충분한 위대한 저작이다.
친구 관계를 통한 효과적인 전도
교회를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삶이다. 영혼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야말로 구원받은 신자의 성화를 이루어가는 삶에 있어서 매우 실천적인 행위이며 바른 태도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눈앞에서 승천하시기 전 말씀하신 지상명령 또한 바로 이 전도, 선교의 사명이었음을 성경은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신자들에게 있어서 전도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종종 전도왕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전도만큼 쉬운게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학생이 인터뷰를 통해 공부만큼 쉬운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 그만큼 전도는 특출난 재능(?)이 없는 일반적인 신자들에게 있어서 결코 쉬운 미션은 아니다.
이러한 전도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면서 전도에 관한 작은 소책자 한권을 만난다. 따뜻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플로이드 맥클랑' 목사의 소책자 시리즈 중 한권인 <친구 관계를 통한 효과적인 전도>라는 책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는 노방 전도, 집을 찾아가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축호 전도 등 다양한 복음 전파의 방식들을 사용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복음의 기쁜 소식으로 인도했다. 이 책은 그러한 많은 열심의 전도 방법들을 아울러 전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직접 길거리에서 전도지나 물티슈, 캔디 등을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초청하는 일도 참으로 귀하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는 조금 오래된 방식 중 하나인 축호 전도 또한 귀한 전도의 방법 중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본서는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이와 같이 전통적인 전도 방식과는 다른 방법을 이야기한다. 책에서 저자는 전도란 우리의 전 삶을 포함함을 말한다. 우리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우리의 삶이 이전의 그것과는 어떠한 차이를 보이면서 변화되었는가를 나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에게 삶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시면서 몸소 복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본을 보였기에 우리에게도 그러한 추구가 있어야함을 강조한다. 또한 책에서는 우리가 그러한 모범적인 삶을 통한 전도자의 모습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수많은 전도의 기회들-우리와 가까운 지인들을 포함-이 열려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가끔 신자된 아내가 불신자인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몇십년을 기도했지만 변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그 이유가 있다. 열심의 신앙생활을 하지만 남편과 자녀들 밥도 제대로 차려주지 않은채 교회 특별집회며 구역 모임등에는 꼬박꼬박 참석하는 아내의 주부로서의 불성실하며 괴리감있는 모습에 남편이 실망한 것이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효과적인 전도는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기초에 세워질 때 비로서 파워를 가진다. 내 이웃과의 관계에서 복음에 합당하지 못한 즉,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복음을 전하기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하는 신자된 자들의 삶의 행태를 안보는 것 같지만 전부 눈여겨 본다. 그렇기에 신자의 본이 되는 삶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도록 돕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또한 본서는 전도의 원리들을 설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친구 관계를 통한 복음 전도'의 방식들을 나열한다. 그런데 그 방식들 모두가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의 방식이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대화하실 때 깊이 이해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 모든 이들이 꺼려하던 문둥병자를 찾아가셨고, 창녀를 만나셨으며 귀신들린 자와 앉은뱅이, 눈먼 자를 찾아가셨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결코 쉽지않은 일들을 예수님께서는 몸소 행하심으로서 본을 보이셨다. 이외에도 우리가 전도를 행할 때에 불신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보편적인 질문들, 예를들어 왜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존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묵인하시는가? 와 같은 물음들에 대한 대답도 수록되어 있기에 본서는 전도를 마음 먹은 신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어찌되었든 책을 통해 독자는 전통적인 전도의 방법과는 다른 전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접할 수 있다.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 세상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과 시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주시한다. 우리가 책에서 말하는 복음을 통한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여줄 때 효과적인 전도의 길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것임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무덤파는 기독교인
'무덤파는 기독교인' 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 출간된 책인데 '무덤파기 작전'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아마도 제목이 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느낌을 출판사 측에서 고려한 듯 하다. 저자는 "소명" 이라는 책으로도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오스 기니스"이다. 그는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입지적 인물인 '프랜시스 쉐퍼'의 라브리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며 쉐퍼에게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을 매우 오래 전에 읽었다. 당시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자가 말하는 메시지의 의도는 대략 눈치를 챘다.
이 책은 기독교인들의 원수인 사단측의 X-파일을 공개하는 상황 아래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마치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보는 듯 하다. 사단의 왕국에 속한 악령들이 마치 인간 정부의 조직 체계와 유사하게 잘 짜여진 시스템과 상명하복의 관계 속에서 이 땅에 있는 교회와 신자들의 삶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들이 이 책을 끌어가는 주된 서술 방식이다. 악령인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마치 전술과 전략을 구상하는 작전회의 문서와 같은 개념이다.
사단 왕국의 정보 요원들은 각자가 세상 속에서 취합한 교회와 신자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그들의 약점을 상부 기관에 보고하면서 교회 전복을 위한 새로운 전술들을 제안한다. 그중에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교회는 이제 넘쳐나는 물질주의와 화려한 문화 속에서 전복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독교에 의해 쌓아올려진 현대 문명과 문화를 볼 때 기독교는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양육한 현대 문명과 문화가 이제는 반대로 교회의 숨통을 잡고 사자의 방법이 아닌 여우의 방법으로 서서히 교회의 생명을 잠식해 들어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재미있는 이야기정도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서도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보며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서늘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정확하게 현대 교회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와 곪아버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그로인해 교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저자의 시대를 읽는 혜안과 통찰 때문이었다. 성도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화려한 볼거리로 채색된 현대 교회의 엔터테인먼트적 예배 속에서 예배와 예전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현대 문화가 주는 즐거움이 교회를 잠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교회를 다양한 멀티플렉스 문화 공간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단 왕국의 정보 요원들은 이 부분을 정확히 직시하며 보고한다.
시민종교, 폐쇄종교, 소비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전복시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하지만 결과는 치명적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보면서 어떠한 대책도 없이 문화에 의해 잠식되어져가는 교회의 무능력은 지금도 세상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머릿속을 강하게 후려쳤던 내용이 생생하다. 역사적으로 사단은 교회와 신자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배교적 삶으로 돌이키도록 하는데 있어서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로마시대 사단은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의 잔인한 칼과 굶주린 맹수들의 밥이 되게도 만들었고, 눈 앞에서 어린 자녀들이 로마의 굶주린 투견들에게 찢겨 죽는 광경을 목도하는 고통을 가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신앙을 고백했다는 이유 하나로 산채로 화형을 당하고 참수되는 일은 다반사였으며 그나마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카타콤 지하 묘지에서 평생을 햇빛도 보지못한 채 죽어가야 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사단의 이러한 강경책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신앙과 믿음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이러한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맞이한 사단이 결국 발견하게 된 해법은 바로 교회와 신자들에게 어떠한 고난과 고통도 가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AD 313년 밀라노칙령에 의해서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을 받고 난 이후 교회와 신자들에게 더 이상의 고난과 핍박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극심한 박해가 사라진 이후 기독교는 정교유착과 더불어 빠르게 타락해간다. 물질과 권력, 쾌락에 물든 기독교는 이제 명맥만 교회일 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사단은 이것을 알았다. 지금의 현대 교회를 향한 단 하나의 전략이 강경책이 아닌 바로 이 온건책임을 말이다. 불신자들도 쉽게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교회의 문턱을 낮춘다는 미명하에 예배는 이제 더 이상 예배답지 않다. 고난이 사라진 후 모든 것이 갖춰지고 풍족해진 현대 교회는 그 옛날 맹수의 이빨 앞에서도 겁먹거나 주눅들지 않았던 초대교회가 가졌던 복음의 야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제 교회는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하면 살아남을 것인지를 고민하며 벌벌떠는 나약한 한마리의 양과 같다. 본서는 사단의 무덤파기 작전은 이렇듯 현대 문명과 문화의 안락함 속에 교회와 신자들을 내던져 놓으면 알아서 본인들이 무덤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귀결됨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예배당이 텅텅 비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 이 책을 상당히 오래 전에 읽었는데 나름대로 저자가 알리려고 하는 핵심은 책의 내용과는 반대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책을 읽으며 가슴을 치고 한탄만 할 필요가 없다. 책의 서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사단 왕국 정보기관의 기밀문서를 교회에서 입수한 경위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이러한 사단의 X-파일 내용을 수포로 돌아가게끔 앞으로 기독교와 교회가 해 나아가야 할 일들과 방향성의 문제를 제시코자 한것이다.
가만히 않아서 문화라는 메가파워에 의해 조금씩 스스로 무덤을 팔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문화를 구속하고 파도를 탈 것인가? 기독교 변증가인 오스 기니스 특유의 문체와 이야기 구성이 조금 딱딱할 수도 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의 물결속에서 절대 진리의 용인은 거부되고, 오직 상대성과 다원성만이 인정되는 지금의 세대 속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시간을 들여 생각하며 정독할만한 가치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