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후기

Why Not Women, 권리포기, 시험

by 독서블로그123 2024. 8. 2.
반응형

Why Not Women

남녀평등, 여권신장의 목소리가 지금 시대보다 크고 강렬했던 적이 드물다. 소위 페미니즘이라는 남성 우월주의에 대항한 사상적 기류가 사회에 전반적인 흐름 속에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벌써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통 1, 2, 3세대의 흐름으로 정의되는 남성 우월주의, 상대적 여성차별과 비하의 문제에 대해 인권 신장과 참정권, 각종 사회 문제의 참여와 기회 균등, 계급과 인종의 평등까지 현대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은 방대해졌다. 그런데 이와같은 현실은 비단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문제 뿐 아니라 기독교 교회 안에서도 역사적으로 그 논란이 다분한 주제이며 이슈이다.

 

교회 내에서의 여성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양한 관점들은 대체로 신학적 문제를 통해 첨예한 대립과 충돌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교회는 명확한 기준과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각기 고수하는 신학적 바탕과 교단의 색깔에 따라서 교회 내 여성 목사 안수제도를 포함한 여성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에 관한 의견은 너무나 분분하고 복잡하다. 이러한 여성 사역자들에 대한 혼란스러운 교회의 입장 속에서 여성 목회자, 사역자들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힌 책 한권이 있다.

 

YWAM 이라는 국제 선교단체의 설립자인 로렌 커닝햄 목사와 그 단체 소속의 성경교사 데이비드 해밀턴이 공저한 책, 'Why Not Women?' 이 오늘 리뷰하게 되는 책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저자들은 "여성들은 왜 안되는가?" 라며 이 책을 통해 역사적이고 전통적으로 있어왔던 교회 내에서의 여성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결론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시작한다. 저자들 모두 성경 교사들답게 귀납법적 성경 연구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성경에서 특별히 신약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 속에 등장하는 여성 사역자들과 관련한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서 논란의 핵심이 되어 왔던 다양한 구절들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둔다.

 

두명의 저자가 공저한 책답게 1장부터 4장까지는 저자 로렌 커닝햄이 예수님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 속에서 보편적으로 있어왔던 여성들에 대한 부당함과 공격에 대한 실제를 이야기하며 왜 교회 내 여성 사역자들에 대한 전통적 인식에 오류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기술한다. 그리고 5장부터 마지막장에 이르기까지는 또 다른 저자 데이비드 해밀턴이 예수님의 시대와 이후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의 희랍과 로마, 유대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넘나들며 성경에서 말하는 여성 사역자들에 대한 오해와 잘못이라 여기는 편견을 허물기 위해 실제적인 작업을 해나간다.

 

머리의 문제, 기도와 예언, 여자는 잠잠하라, 여자는 가르치지 말라와 같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구절들에 대해 귀납법적 성경 연구의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 나름의 해석해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책에서는 여성에 대한 끝이 없는 편견과 경시의 문화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또한 희랍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회는 물론 교회내에서 까지도 여성 리더십에 대한 불인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영적자산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독특한 점은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교회 내 지도력을 인정한 전통적 성경의 가르침들을 수많은 문헌과 자료, 언어학적 고증의 방법까지 동원하여 저자들이 발견하고 생각하는 그들 나름의 반론들을 펼쳐간다. 남성과 여성의 가치는 동일하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교회 안에서의 여성들의 지도자적 권위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쟁은 현대 교회 안에서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화두이다. 그리고 본서를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반응은 두 갈래로 갈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성경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믿고 따르는 가운데서 오직 성경에 기반한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성경해석 방법을 통한 교회 내 여성 지도자들에 관한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모든 행위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인간의 학문과 나름의 관점, 거기에 자신만의 신앙적 신념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말하는 것으로부터 한치의 벗어남도 없는 매서움이 필요한 시대이다.

 

권리포기

병목이 좁은 병안에 가득들은 사탕을 보고 손을 넣어 욕심껏 한움큼 움켜쥐고 손을 빼려니 사탕을 움켜 쥔 주먹이 병목에 걸려서 빠져나올 수 없어 옴짝달싹 할 수 없기에 애를 써보다가 어쩔 수 없이 손에 쥔 사탕을 버리자 다시 손을 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욕심을 버리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 하나라도 더 움켜쥐는 것이 미덕인 세상 속에서 내가 가진 것을 손쉽게 내어놓고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세상의 목소리는 빼앗고 취하고 쌓아놓을 때만이 우리의 삶이 부요해지고 풍족해지며 안정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다. 성경은 분명 나의 것을 내려놓을 때 더 부요한 삶을 맛볼 수 있음을 말한다.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나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할 때 더 큰 것, 더 의미있는 것이 보인다. 본서는 이러한 포기에 관한 개신교적 가르침이 매우 간결하고 쉽게 집약된 신앙도서이다.

특별히 이 책은 YWAM이라는 초교파 개신교 선교단체에서 추구하는 핵심가치 중 하나를 주제로 다룬 책이다. 그 단체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 가치인 '권리포기'를 몸소 실천하며 오랜 시간 사역한 저자의 가르침이 녹아져 있기에 책의 내용은 진솔하며 정직하다. 책은 권리포기에 대해 생소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권리포기의 정의를 간략히 설명하고 이어서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모세, 여호수아, 다윗의 예를 성경 속에서 찾아 진정한 권리포기의 삶이 어떠한 모습의 삶인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권리포기"란 우리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것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어린 권고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신자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으며 신뢰함으로 살아가는것,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필요한 신앙의 모습이다. 말씀 앞에 신을 벗었던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영적인 권위를 존중하며 복수의 권리를 포기한 다윗의 모습 속에서 독자는 진정한 삶의 권리포기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가운데서 나온다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책의 후반부 지면을 할애하여 이제는 우리의 최고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철저한 권리포기의 삶을 살다가셨음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의 권리포기는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권리들을 포기하셨는가? 예수님은 세상 풍속을 따를 권리, 자존심을 지킬 권리, 사랑받고 인정받고 감사받는 권리, 자기 영광을 취할 권리, 왕국을 만들을 군림할 권리 등을 포기하셨다. 어쩌면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기에 그분에게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세상이 바라보는 그들의 좋은 것들을 누릴 모든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심으로서 세상과 교회에 진짜 권리포기의 삶이 무엇인지 본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좇았던 제자들 또한 그분을 본받아서 어떠한 권리들을 포기했는가? 하는 내용들은 우리가 사회와 교회에서 맞부딪치는 여러가지 관계의 어려움과 환경의 장애를 극복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제자들은 불평불만 하는 권리, 건의하거나 간섭하는 권리, 비판이나 험담하는 권리, 소외되었을 때 반발하는 권리, 상처받고 떠나는 권리를 포기했다.

 

세상이 볼 때 신자들의 권리포기는 우수꽝스러운 개그적 몸부림을 보일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권리포기란 내가 충분히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나의 것을 내려놓는 반대정신적인 신앙적 움직임이다. 이 음식을 주면 당장 나는 한끼를 굶어야함에도 이웃의 굶주림을 보고 지나칠 수 없기에 나의 음식을 내어주는 것, 이 돈을 주고 나면 당장 나는 버스를 타지 못하고 몇 정거장을 걸어갈 수도 있음을 알지만 기꺼이 어려운 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통해서 권리포기란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의 공격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의 욕심과 탐욕의 군더더기를 깨끗히 벗겨내는 일종의 자기 경건 행위의 극대화이며 표출이다.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고, 안정을 추구하고 싶으며 주목받고 박수받고 싶은 지극히 정상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역행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과격한 권리포기의 삶의 대표적인 모습이다.이 책의 내용추천에는 잠들어버린 믿음의 시대, '사서 고생' 할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것을 얻기 원함으로 권리포기의 삶을 살고자 원하는 '사서 고생' 할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도전이 될 만한 책이다.

 

시험

교회를 출석하며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주변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 나 시험 들었어!" 참으로 많이 듣는 이야기인데 들을 때마다 의아했다. 그럼 신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시험에 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설명한 책 한권이 있다. 바로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이 집필한 <시험> 이다.

 

본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험, 유혹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존 오웬의 담론을 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역작이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마태복음 26장 41절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시험의 진정한 개념과 본질, 시험에 빠지는 것의 위험성,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신자들의 의무에 대해서 청교도의 황태자답게 매우 정교한 논지를 펼쳐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험은 흔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test(시련)와 사단과 타락한 세상에 의한 유혹의 의미를 지니는temptation과 같이 기계적인 구분을 통한 것이지만 존 오웬은 시련과 유혹을 통합적 의미로 접근한다. 시련은 시험에 대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시험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신자의 불순종과 거역함이라는 적극적인 삶의 반응이 결합될 때 진짜 시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시험은 일반적이고 소극적인 의미에서 신자들의 영혼에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성향을 지닌다. 반면 적극적인 의미에서 시험은 신자들을 죄악으로 이끄는 악독함의 의미를 가진다. 존 오웬이 본서를 통해 우리에게 강론하는 것은 바로 후자의 의미로서의 시험을 말한다. 신자들을 어떻게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떨어져서 사단의 영향력 아래서 살아가도록 죄악으로 이끄는 시험에 대해서 주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렇기에 시험은 신자의 성화의 과정 속에서 어찌되었든 만나게 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시험을 회피하기보다는 하나님의 탁월한 능력과 지혜, 은혜를 통해 극복함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배워가고 한층 더 성숙한 신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닥치는 시험에 대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마치 벌레보듯 두려워하거나 진절머리치는 그 무엇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어쩌면 지금 이 시기에 우리의 삶을 더 한층 성숙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그 시험을 통해 나의 연약함과 부패성을 깨닫고 발견하게 되는 계기로서 사용할 수도 있다. 저자는 계속적으로 신자가 시험에 대처하기 위한 의무들, 일반적인 지침들을 제시함으로서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를 삼키려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험에 대해서 싸울 힘과 용기를 얻도록 격려한다. 시험과 유혹은 먼저 신자의 영혼에 대해 지성적 유혹을 통해 지성과 정서를 교란한다. 그렇게함으로서 신자는 죄의 욕망에 이끌리게 되며 이윽고 마음은 죄의 유혹으로 인해 돌같이 굳어지짐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무뎌지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자의 흐려진 지성과 굳어진 마음은 마침내 시험과 유혹을 통해 영혼의 파괴라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다. 신자의 내면과 영혼은 이제 은혜의 상태에서 벗어나 실천적 무신론자의 삶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와같이 죄의 시험과 유혹에 빠져 흐리멍텅한 지성과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을 가지고 교회 문턱을 습관적으로 밟는 명목상의 신자들이 너무나 많다. 영혼은 이미 죄로 인해 초토화되어서 더 이상 강단에서 울려퍼지는 목회자들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어떠한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성경을 펼쳐도 그것이 진리의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 따분한 역사책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되는 이러한 병적인 상태가 바로 시험과 유혹이 가져다주는 결과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시험에 대해 그렇다면 신자는 어떠한 자세를 견지할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 솔루션을 제시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다.

 

존 오웬 목사님의 책을 읽다보면 "아! 어떻게 이렇게 인간의 내면과 영혼에 대해서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라는 신음과 감탄사가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만큼 존 오웬이라는 영적 거인의 그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스펙트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적으로 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자가 당하는 시험과 유혹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마귀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일반적인 실수에 대한 것이다. 오웬은 본서를 통해 신자가 당하는 시험과 그로인한 죄를 짓는 행위가 세상과 마귀에게 있다고 전적으로 탓을 돌릴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신자에게는 마땅히 시험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의 장치가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기에 시험과 유혹의 순간에 죄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은혜에 순종할 것인가의 의무가 있다. 그가 살던 당시 17세기의 사상적 조류가 중세 스콜라주의 영향하에 신 존재 조차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분위기였으며 옥스퍼드 대학까지 자유주의에 의해 침식 당하고 있었다는 시대적 상황을 우선적으로 이해하고 본다면 존 오웬의 저작들이 가지고 있는 그 신학적 중요성과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페이지씩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다보면 깊은 진리의 보고를 발견하는 기쁨 또한 누릴 수 있게 만드는 위대한 저작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