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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1, 페스트, 기독교강요

by 독서블로그123 2024.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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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1

언제부턴가 아이가 집안에서 노래 하나를 신나게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게 되네요. 만화 주제가이겠거니 생각하며 처음에는 무심하게 흘려보냈는데 명절 외갓댁에서 만난 사촌동생과 듀엣으로 불러대는통에 관심을 갖고 듣게 되었어요. "엉덩이 탐정 뿌뿡뿡~추리 줄~주리 해결해간다~" 계속 듣다보니 요즘 애들말로 중독성 완전 쩔어 어느새 무심코 내 입에서 엉덩이 탐정의 주제가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요즘 대략 5세~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소위 핫한 애니메이션은 바로 리뷰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중독성 쩌는 주제가의 주인공 엉덩이 탐정이랍니다. 얼굴 자체가 엉덩이인 '엉덩이 탐정'은 그의 조수 '브라운' 군과 함께 사건 발생의 현장을 누비며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동원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가는 명탐정이에요. 이 책은 바로 TV애니메이션으로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엉덩이 탐정에 관한 이야기가 코믹북으로 만들어져서 출간되었답니다. 기본적으로 두편의 이야기가 실렸네요. 1편 뿡뿡! 코알라양의 대활약과 2편 뿡뿡! 위험한 발명품.

 

책의 특징은 단순히 만화영화를 코믹북 형태로 편집해서 만든 것을 벗어나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의 사건 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엉덩이 탐정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미로 찾기 문제, 숨은 그림 찾기,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퀴즈 등을 제시함으로서 어린이들이 책의 내용을 집중해서 읽고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렇기에 책은 흥미와 함께 어린이 독자들에게 있어서 관찰력과 주의력, 집중력 향상을 위해서 더할나위 없이 유익한 기능을 선사하죠. 책이 도착하고 아이가 집중해서 연거푸 2회 연속 완독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만화책 한권이 가지는 파워를 느낍니다. 공부나 숙제를 저렇게 집중해서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더불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보너스는 바로 컬러링북이 마치 부록과 같이 동봉되어 왔다는 점이에요. 책만 읽고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쉽죠. 그렇기에 어린이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엉덩이 탐정 주인공들의 모습을 색연필로 직접 색칠하고 꾸며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원판을 보면서 똑같은 색깔로 칠하려고 초집중하는 아이의 모습이 실로 놀라울 뿐이에요.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의 뒷면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엉덩이 탐정 유튜브 동영상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은 책이 가진 작지만 소소한 배려라고 여겨집니다.

 

엉덩이 탐정은 얼굴 자체가 엉덩이에요. 처음에 복숭아인 줄 알았습니다. 초집중하며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 같은 아이에게 "저거! 복숭아 아니냐" 고 질문했다가 "복숭아 아니라고! 엉덩이!" 라고 한소리 듣습니다. 단 5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요새 아이들의 관심과 집중, 흥미를 이렇게 단단히 붙잡아 끌고가는 한편의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저러나 싶은 궁금한 마음이 생겼죠. 그리고 어느새 TV앞에서 아이와 함께 만화를 시청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20여분의 상영시간을 가진 실제 만화 영화도 생각없이 보게 되니 은근히 재미있네요. 특별히 엉덩이 탐정이 사건을 최종적으로 해결해가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위기의 순간 "미안하지만 실례 좀 하겠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자신의 엉덩이 얼굴에서 강력한 방구를 뿜어대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엉덩이 사잇골에서 뿜어져나오는 방구야말로 엉덩이 탐정이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비밀병기가 아닐 수 없네요.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서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 만나게 된 본서의 가치는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주의력과 집중력, 관찰력 향상에 더불어 재미까지 선사하는 본서 엉덩이 탐정 코믹북만큼 좋은 책이 또 있을까요? '코믹북1' 이라고 넘버링되어 있는 것을 보니 향후 후속작들이 시리즈로 나오리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어른들도 함께 공감하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1'을 요즘 같은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해봅니다!

 

 

페스트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희망찬 막을 연 인류가 맞닥뜨리게 된 불행 중 하나는 전염병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상을 대변하는 코로나19이다.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게 만든 이 전염성 질환으로 인해 대한민국을 포함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적실성 있는 책 한권을 만난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에 부합하는 오래 전 출간 된 이 책의 소환은 시대의 당연한 요구로 인한 것이 아닐까?

 

<이방인>으로 알려진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명인 '알베르 카뮈'의 작품인 <페스트>는 1947년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너무나 유명한 저작이다. 이 책의 배경은 프랑스 소재 작은 시골 마을 '오랑' 시이며 대략적인 줄거리는 그곳에서 발병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흑사병, 즉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세 유럽 전체 인구의 1/3의 목숨을 앗아간 전무후무할 정도의 살상력을 지녔던 페스트가 20세기 중반 '오랑' 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을 덮친다. 무미건조할 법한 일상의 반복이 쳇바퀴 굴러가듯 이어지던 이 마을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은 페스트로 인해 하루아침에 오랑은 더 이상 평범함을 꿈꿀 수 없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자는 책을 통해 몇몇 주된 인물들의 심리와 심경의 변화를 토대로 페스트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들추어내는 작업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선 인물인 의사 리외와 그의 이웃이자 친구인 타루, 성직자인 파늘루 신부, 취재차 오랑을 방문했다가 오랑시의 모든 관문이 폐쇄되는 조치로 인해 발목이 붙잡혀 버린 기자 랑베르, 시청의 말단 서기 그랑.

 

각양 각색의 인물이 가지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살려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카뮈가 가지는 그 문학적 천재성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전작 <이방인>을 통해서도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탁월함을 드러낸 바 있기에 본서를 통해서도 카뮈는 그가 창조해 낸 다양한 인물들의 심경을 세밀한 터치로 묘사함으로서 정적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원초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마치 책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을 때 보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저릿한 감정의 곡선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카뮈의 탁월함을 엿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 제공된 역자해제는 독자들로 하여금 제시된 해답지와 같이 작가인 카뮈가 본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를 발견하는 손쉬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지금의 시국에서 이 책을 집어든 독자의 의도가 재미와 궁금증이라는 다소 가벼운 마음에 기인했든 아니면 무엇인가 책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기대하는 연약한 마음에 기인했든 이 책을 펼쳐든 이상 독자의 의무는 카뮈가 전하는 정답을 잠시 덮어둔 채 독자로서의 주체성을 지키며 자신만의 비판적 의견과 생각을 능동적으로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랑 시는 페스트로 인해 모든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도시의 관문이 모두 폐쇄되는 극단의 조치가 취해짐으로서 들어갈 수도 없고 나갈수도 없는 말그대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페스트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간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타루가 이야기하는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적 의심과 불신의 포비아! 어제까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었던 나의 이웃이 나에게 페스트를 전염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로 둔갑하게된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카뮈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라는 명제에 화답이라도 하듯 사회적 절망에 대한 경고의 문구까지 참으로 친절(?)하기만 하다.

 

또한 타루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간이 가진 병적 이기심을 꼬집는다. 오랑 시는 관문 폐쇄와 격리라는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사형을 선고받았다. 오랑 시를 제외한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은 선량한(?)사람들의 숙면, 그들의 행복은 페스트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집단적 이기심의 발로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폐쇄와 격리라는 사형선고를 합리화시킨다. 다른 이들의 죽음과 불행을 방관하고 방임하는 것에 대한 책임에서 누구하나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오랑 시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자들이 정신적 페스트에 걸린 자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유무형의 페스트에 감염된 자들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물리적인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기에 존재 자체가 건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으로 타루의 이야기는 우리의 텅빈 사고를 단단한 목공용 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카뮈가 선택한 소설의 소재는 물리적 질병의 하나인 페스트였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의는 비단 전염병으로서의 페스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 말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의 혈관 속에 흐르는 그 추악하고 더러운 반인륜적이며 부도덕한 인자에 대한 꼬집음이다. 타락한 인간성에 기인하는 이러한 패륜적 이기심이 인간군상 누구에게나 항존한다는 이 거부하고만 싶은 현실의 민낯을 카뮈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메타포로 사용하여 훌륭하게 고발한다. 인간 내면의 도덕 기준의 부재로 발현한 질병을 다른 이들에게 감염시키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자발적 격리의 몸부림은 타루가 말한대로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보다 몇배는 더 피곤한 일상의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죽음 외에는 해방의 길이 없다고 말했지만 소설의 결말이 인간에게 남겨진 한가닥의 소망을 지향하기에 독자 또한 인간성 회복의 싸움을 위한 손을 쉽게 떨굴수는 없는 것이리라.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던 너무나 당연시 여겼던 요즘 우리네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그리움과 평범함을 향한 감사의 마음은 일상성의 회복이라는 염원으로 귀결된다. 또한 소설 속 폐쇄된 공간 오랑 시의 모습 속에서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희미한 모습으로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아울러 책을 덮으며 작년에 완독한 카뮈의 전작 <이방인>의 어렴풋한 향기를 느낀다. 책의 곳곳에 숨어있는 전작의 체취를 통해 카뮈가 추구하는 기성 체계의 완고함에 대한 반항과 현실의 물줄기를 역행하고자 하는 투쟁의 사고를 엿보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결코 순응할 수 없고, 순응하고 싶지 않은 카뮈의 작가 정신이 투영된 <이방인> 그리고 <페스트>를 통해 코로나19라는 결코 굴복하고 싶지 않은 전염병이 가진 그 이면의 의미를 찾아가보는 것이야말로 격리된 듯한 단조로운 일상 속에 흥미로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기독교강요

로마 카톨릭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 있다면 개신교에는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대작인 <기독교 강요>를 펼쳐든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얇팍한 신앙적 지식에 자족하며 깊고 깊은 심해가 아닌 발목도 적시지 못하는 개천 웅덩이 수준에서 하나님과 교회, 신학과 신앙, 역사와 세상을 논하는 교만과 무지에 빠져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본서는 존 칼빈의 전 생애에 걸친 대작으로 총 4부로 나뉘어져 있고 CH북스에서는 3권으로 분책하여 출간하고 있다. 그중 상권에서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1부와 2부로 나눠서 집필하고 있다. 본서는 초판에서부터 최종판이 나온 1559년까지 총 5번의 탄생을 거듭한 대작으로 종교개혁의 과업을 이루어나갔던 위대한 신학자 존 칼빈의 교리적이고 사상적인 체계의 거대한 완성이라고 평할 수 있다.

 

개신교에서도 특별히 개혁주의 목회권에서 본서가 가지는 가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러한 비유가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성경 다음으로 본서가 지니는 영적이며 지성적인 권위는 아마도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현 시대의 교회들에게까지도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과한 비유는 아닐 것이다. 개혁주의 개신교 교리의 총체적 집합체인 본서의 내용을 단 몇줄의 서평으로 가늠할 수 없지만 본서에서 저자는 중세시대의 암흑기를 지나오면서 로마 카톨릭에 의해 왜곡되어지고 감춰졌던 진리에 대한 재발견의 작업을 날카로운 비수와 같은 냉정함과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상적 탁월함을 갖춘 지성,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심장으로 거침없이 펼쳐 나간다.

 

존 칼빈이 살던 당시 중세 교회의 시대적 상황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이러한 어둠의 시대 속에서 온전한 진리는 빛을 잃고 땅에 묻혔으며 진리를 외치는 자들은 누구하나 예외없이 잔혹한 고문을 온몸으로 받아낸 후 화형장 화형주에 묶여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야만과 광기의 시대였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나설 수 없는 로마 카톨릭 교권주의가 득세하던 공포의 시대 상황 속에서 존 칼빈은 온전한 성경 말씀과 진리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본 저작의 집필을 강행한다. 그뿐이겠는가? 로마 카톨릭의 서슬퍼런 감시와 위협 뿐 아니라 진리를 변질시키고 말씀을 오용하는 각종 이단들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은 이후 세대에서는 찾아볼 수 조차 없게 될 것이라는 위기를 인식하고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몸이 바스라지는 지성적 헌신을 다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과 그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지혜, 그리고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해 본서는 탁월함을 넘어 개혁주의 개신교의 교과서라 평가받기 합당하다. 그렇기에 이후 등장하게 되는 모든 개혁주의 교리서들의 대부분이 바로 본서를 뿌리로 하여 파생되어진 저작들임을 쉽게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본서가 단지 목회자들에게만 필요한 어렵고 난해한 교리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평신도들의 삶의 지평에까지 충분히 흡수되어 생동감 있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다.

 

본서를 펼치며 각권 6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함에 놀랐지만 더욱 더 놀라웠던 점은 책의 두께만큼이나 깊고 묵직한 저작의 존재적 무게감이다. 카톨릭 교황주의자들에 의한 생명의 위협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파리한 손으로 붓을 들었을 저자의 핏기 없는 얼굴이 오버랩 되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우리는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걸어야 했던 종교개혁 당시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의 찬란한 신학적 유산을 시대와 걸맞지 않고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나 쉽게 간과해버기 일쑤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목회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영역적 한계를 지닌다고 너무나 안일하게 치부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는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금 많은 교회들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정부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현장 예배를 고수하는 교회들도 상당수 있다. 온라인 예배의 기술적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개척교회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이 현장예배를 고수할 밖에 없는 작은 교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충분히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중대형 교회들의 모습을 보며 교리와 신학적 지식의 부재가 가져다 준 신앙공동화 현상의 병폐를 체감한다. 팩트는 정부가 교회 예배를 강압적으로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협조를 요청했다. 사회 공공선의 실현과 이웃 사랑이라는 성경적 가치 실현에 대한 교리적 지식과 신학적 밑바탕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같은 개신교인으로 낯이 뜨겁다. 결국은 그렇다! 성경 말씀을 기반으로 한 본서와 같이 묵직한 사상적 체계를 갖춘 교리적 지식과 성령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이 있을 때만이 교회와 신자의 삶은 세상 속에서 빛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교회론을 다루는 <기독교 강요> 하권에서 이에 대한 내용이 더 자세하게 등장한다.

 

매일 쳇 바퀴 돌 듯 동일한 일상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자신의 삶의 문제에 버거워하는 수 많은 신자들의 삶에 근본적인 해답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tip은 바로 성경과 함께 탄탄한 교리를 토대로 한 <기독교 강요>와 같은 묵직한 저작을 통한 진리의 되새김이며 실천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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