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정말 많다. 그렇기에 매일 매일 셀 수 없을 정도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서점가의 신간 코너에서 독자는 어떤 책을 읽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다양한 분야 속 다채로운 주제의 책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진 관록의 작가들과 이제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신예 작가들의 책까지 정말 많은 책들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러나 명불허전이라는 옛말이 건재하듯 오랜 세월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사랑받아 왔던 책들은 있는 법. 오늘 리뷰하게 되는 책, '루 월리스'의 <벤허>야 말로 명불허전에 딱 맞는 바로 그러한 걸작 중의 걸작이다. 요즘 폭넓은 독자층으로부터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고전문학 작품들을 출간 당시 초판본 커버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서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 '더 스토리'의 초판본 시리즈가 인기다. 본서도 바로 이 초판본 시리즈 기획 제작의 한권으로서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성탄절이 되면 특선영화로 방영되곤 했던 영화 <벤허>는 많은 영화팬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명작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빛바랜 컬러 TV를 통해 본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역동적이고 스릴 넘쳤던 원형 경기장 안에서의 전차 경주씬이다. 이 장면은 요즘의 블록버스터와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화면을 압도하는 전차마들의 무시무시한 질주와 그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기수들의 살기 어린 눈빛과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관중들의 외침과 환호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영화 <벤허>의 스펙타클한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벤허>는 1880년 미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루 월리스에 의해서 쓰여진 장편 역사 소설이며 위에 언급한 영화 <벤허>는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어 아카데미 11개 부문 상을 휩쓴 명작이다. 소설은 기독교적 배경 속에서 '벤허'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기록한 일종의 대서사시와 같다. 벤허(BEN-HUR), '벤'은 히브리어로 아들이라는 뜻으로서 직역을 하면 '허의 아들, 허 가문의 아들' 이라는 의미다.
주인공은 이스라엘이 로마 제국의 압제하에 있던 당시 예루살렘 부유한 유대 왕족 '허' 가문의 아들 '유다'이다. 사건의 발단은 유대지역의 신임 로마 총독으로 부임하는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 행렬을 자신의 집 옥상에서 구경하던 중 낡은 타일이 떨어져나가면서 운 나쁘게도 그것이 그라투스 총독의 머리 위로 떨어지게 된다. 말에서 낙마한 총독은 가벼운 부상을 입지만 유다는 총독 암살 혐의를 받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티르자 마저 로마군에게 붙잡혀가는 비극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을 옆에서 방조하며 아니 더 부추기며 유다와 그의 가족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은 다름아닌 유다와 어린시절부터 죽마고우로 지냈던 로마인 '메살라' 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유다를 뿌리치고 오히려 더욱 더 단호하게 유다와 그의 가족을 총독 암살범으로 몰아가며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명예와 권력 그리고 허 가문이 가진 막대한 재산이었다.
이렇게 유다는 총독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쓴채 로마 해군의 갤리선 노잡이 노예로 끌려가고, 어머니와 누이 티르자 또한 생사와 행방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됨으로서 하루아침에 정상적인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이후 벤허 유다는 갤리선 노잡이 노예로 죽음과 같은 3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날 그가 탄 배가 그리스 해적선과의 전투 도중 침몰하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유다는 익사 직전에 있던 로마 해군 총사령관 퀸투스 아리우스를 건져내어 그의 생명을 구한다. 이후 승전보를 안고 로마로 개선한 아리우스는 유다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 모든 부와 명예를 상속시킨다.
유대 왕족에서 갤리선 노예 그리고 다시 부유한 로마 귀족이 된 벤허에게 이제는 오직 두가지의 삶의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파멸에 이르게 한 옛 친구이자 이제는 그의 원수가 된 비열한 로마인 메살라에 대한 원한과 복수, 그리고 생사를 알 길 없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벤허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유무형의 도움을 받으며 잠시 언급한 영화 벤허의 명장면 중 하나인 전차 경주를 통해 마침내 그렇게도 바라던 원수 메살라를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꺽어버림으로 통쾌한 복수극의 방점을 찍는다. 이 경주의 과정 중 전차에서 낙마한 메살라는 뒤따르던 다른 기수의 말과 전차에 깔려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고, 생명은 건지지만 하반신 불구라는 죽음보다 끔찍한 장애를 입게 된다. 더불어 자신의 승리를 오만스럽게 낙점하며 전 재산을 스포츠 토토하듯 내걸었던 메살라는 패배로 인해 모든 재산을 잃게 되는 인과응보의 살아있는 표본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개인적인 복수를 완성한 유다의 분노어린 칼끝은 이제 그의 가정과 자신의 민족을 압제하는 로마 제국 전체를 향한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어느 비범한 사람과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로마 제국을 향해 피의 복수를 꿈꾸고 계획하던 벤허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그분은 왕이 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왕이 되는가의 여부를 궁금케 만든 사람이다. 벤허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그분을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시킬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지도자로 이해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께서 로마 제국에 대해 거사를 일으킬 때 자신 또한 그동안 갈고 닦았던 무예와 병법으로 왕을 도와 로마 제국 타도의 최전선에 서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대목에서 복음의 신비를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논란은 지금 이 세상 속에서도 여전하기에 벤허가 살았던 당시는 더욱 더 미스테리한 주제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 필멸의 육체와 불멸의 영혼, 두 가지가 하나로 합해진 존재임을 모르거나 이해못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벤허의 추측과 생각이 핀트가 나가도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벗어났음을 독자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780여페이지의 어마무시한 두께, 책마니아들의 농담으로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대작이 가지는 문학적 가치와 책이 뿜어내는 진중한 무게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리뷰의 서두에서 말한대로 정말 좋은 책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책을 표현하는 미사여구가 빈약할 따름이다. 로마로부터 가족과 재산, 자신의 인생까지 송두리채 빼앗긴 벤허라는 캐릭터가 표현하는 전반적인 느낌은 뼈에 사무치는 원한과 혈관을 얼어붙게 만드는 복수에 대한 갈망이며 동시에 헤어진 가족들에 대한 애뜻한 연민이자 그리움이다. 그러나 본서는 벤허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룸과 동시에 2천년전 유대땅에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기록해나간다. 그렇기에 눈치가 빠른 독자는 본 소설이 일종의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벤허의 이야기와 성경 속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 사건이라는 2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마치 씨줄과 날줄로 엮이고 중첩되어지듯 맞물리면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책을 통해서 '루 월리스'의 작가적 역량에 대해 무한감탄하며 읽었다. 본서를 단지 기독교적 색채를 띤 종교소설 정도로만 이해하면 이 책을 한참 오해한 것이다. 그리스도 탄생 당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집트, 로마,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까지 근동 지방의 인문적 특색과 문화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작가의 방대한 역사적 배경 지식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렇기에 본서는 단순 종교적 색채를 띈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 시대적 배경이 어우러진 인문고전으로서 평가하기에도 결코 손색이 없다.
몇일동안 새벽잠을 반납하며 읽는 중 가장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던 장면은 그라투스 총독 암살범의 누명을 쓰고 갤리선 노예로 끌려가던 벤허와 이름모를 어느 갈릴리 청년의 조우였다. 갈증 속에 허덕이며 개처럼 끌려가던 벤허에게 다가와 물 한잔을 건네던 이 청년은 다름아닌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였다. 그리고 이 장면은 8년이 지나 골고다라는 언덕에서 동일하게 재연된다. 단지 물을 건네는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던 예수에게 벤허는 자신에게 물을 건네셨던 예수를 기억하며 포도주를 건넨다. 갤리선 노예로 끌려가던 벤허와 청년 예수의 만남은 작가 루 월리스가 만들어낸 완벽한 복선이다. 소설의 한 측면이 워낙 성경에 기반하고 있기에 마치 실화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픽션임을 감안한다해도 작가가 어떻게 이런 허구적 복선을 완벽하게 구상했을까 생각하니 다소 소름끼치는 전율과 감동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는내내 개신교 신자로서 깊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비단 종교를 떠나서도 흥미로움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책이 많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러한 독자의 두가지 욕구를 모두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한 저작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아직 읽어본 적 없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단연코 서점 장바구니 구매 1순위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원한과 복수 그리고 사랑으로 승화되어 그 모든 미움과 증오를 이기는 진정한 힘의 실체를 깨달은 한 남자의 인생 드라마는 여전히 반목하고 미워하며 질투하고 질시하는 깨어짐과 투쟁이 일상화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가슴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과 따뜻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더 스토리 출판사의 초판본 시리즈 <벤허>와 함께 따스한 봄 햇살 속에서 한권의 고전이 주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껴보시길...
메리 슬레서
개신교 신앙 전기 시리즈로 발간된 6번째 책의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출신 아프리카 여 선교사 '메리 슬레서'이다. 1848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메리 슬레서' 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비참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던디의 방직공장에서 11살 때부터 28살이 될 때까지 힘든 일을 마다 않고 일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며 꾸준한 신앙생활을 해오던 메리는 선교사로 나가기로 했던 오빠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오빠를 대신하여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그리고 "전진하는 한,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말을 떠올리며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28세의 젊은 나이로 현재 나이지리아의 '칼라바르'라는 지역을 향해 선교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지만 좀 더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아프리카의 내륙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게 된다. 당시 아프리카 내륙은 건장한 남성 선교사들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위험이 도사리는 지역이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복음을 안고 메리 슬레서는 마침내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가서 미개한 부족들과 함께 살면서 가르치고 치료하며 그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등의 일을 행한다.
독신 여성 선교사로서 만나게 된 칼라바르 지역의 문화와 관습은 그동안 그녀가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와는 다른 너무나 이질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특히 미신, 주술과 같은 악습으로 인해 칼라바르 원주민들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잘못된 세계관에 사로잡혀있었다. 어느날 아침 메리가 거주하던 집 문밖에 누군가가 갓난아기 한명을 버려두고 간 것을 발견한다. 추측컨대 칼라바르에서는 다른 여인의 아기를 대신 맡아서 길러주는 일은 말도 안되는 일이며 노예로 일하던 여인이 죽으면 어린 자녀들을 죽여서 어머니와 함께 땅에 묻는 등의 잔인한 풍습이 일반화 된 사회였다. 그렇기에 아마도 이 아기 또한 이러한 위험 속에 버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더 심한 폐습은 칼라바르 사람들의 쌍둥이 살해 풍습이다. 칼라바르 사람들은 쌍둥이를 악령의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여 쌍둥이가 태어나면 아기들을 모두 죽이고, 산모 또한 죽이거나 집에서 내쫓는다. 그리고 운좋게 살해를 면하고 집에서 내쫓긴 산모 또한 저주받은 여인이기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얼마 못가서 죽는다.
이렇게 각종 미신과 주술, 폐습이 가득한 이 미개한 땅에서 메리 슬래서 선교사는 자신에게 맡겨진 피부색이 다른 영혼들을 거두고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살아간다. 그 이후 영국정부로부터 '오코용' 지역의 부영사라는 직책까지 맡게 된 메리는 다른 선교사들의 후속사역을 지원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기반을 닦는 사역을 계속 해나가게 된다. 그녀는 원주민들과 동일한 움막에서 사는 등의 그들과 동일시 되는 모습으로 한평생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아프리카 칼라바르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은 급기야는 그들로 하여금 빨강머리의 '백색 어머니' 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됨으로서 그녀가 이제 이 땅에서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인지를 확증했다.
그녀의 이러한 헌신적 사역의 결과 복음이 어둠의 땅에 전해지게 되는 발판이 마련되는 계기를 가져오게 된다.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 그녀는 하나님의 부름심에 순종하며 아프리카에 발을 내딛은 지 40년만인 1915년 66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에카 크푹프루 워우(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애도의 감정을 표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미개함의 어둠 속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한 이 여리고 여린 한 백인 독신 여성 선교사의 삶은 이후 복음 선교에 헌신하게 되는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귀감이 된다.
책을 덮으며 마음 속 깊이 남는 귀중한 깨달음은 메리 슬레서 그녀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그녀가 11살 때부터 28살때까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면 방직공장에서 방직공으로 일하였을 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포자기하고 그냥 주어진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참한 가난과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절망과 같은 삶의 정황 속에서 위대한 복음 사역을 위해 자신의 삶을 앞으로 전진하도록 스스로를 채근하고 독려했다는 점이다. 그녀에게 포기란 없었다. 평생을 면 방직공으로 살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좀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에 자신을 드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 그녀는 주저함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작은 전기집 한권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 시간이다. 계속 발전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현상 유지에 만족할 것인가? 이만하면 됐지! 라고 스스로를 자위할 때 어느 순간 삶의 발전은 멈추게 된다. 코에서 생기가 멎는 그 순간까지 도전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안됨을 일깨워 준 작은 책 한권이 고맙다.
이재철 목사의 청년서신
본서는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를 담임했던 이재철 목사의 2권의 책을 합본으로 발간한 도서이다. 출판된 지가 좀 지났지만 워낙 유명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읽어봤을 것이다. 첫번째 책인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는 유독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청년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아비의 마음이 농축되어 있는 청년서신이다.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 세대 속에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 해답이 문장 한줄 단어 하나마다 인생의 모진 굴곡을 겪으면서 체득한 저자 본인의 삶의 경험을 통해 진득하게 베어나오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비전, 직업, 문화, 역사, 경건, 애국, 용기, 의, 효도 등등 우리가 그동안 성경적인 맥락에서 연결짓기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소주제들이 저자의 탁월한 신학적 식견과 시대와 사람을 읽는 깊은 혜안에 의해 알기 쉽게 해제되고 있기에 독자는 바로 앞에서 저자의 직강을 듣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서는 하나님께서 이재철이라는 한국 교회 안에 허락하신 겸손한 목회자를 통해서 부으시는 깊은 은혜가 있다는 점이다.
한명의 목회자가 교회가 커지고 교세가 확장 된 후 기득권의 자리에서 그 자리를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과감하게 털고 떠날 수 있으려면 아마도 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는 이미 그의 행보를 통해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기득권을 온전히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줬다. 그렇기에 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와 같은 한권의 책은 깊은 감동과 여운을 가진다. 진실된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리의 향기는 그래서 더 깊고 진한가보다.
두번째 책 '참으로 신실하게' 또한 청년들을 향한 그의 애절하고도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서신이며 일종의 설교집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가 3년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인 교회 목회를 하던 당시 독일과 유럽의 청년들과 함께 나누었던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하지만 그 대상은 비단 유럽의 청년들만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목자의 마음이 더 깊게 느껴진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조국 교회의 현실과 함께 그 현실을 짊어지고 가야 할 청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절한 사랑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다. 본서는 성경이 말하는 말씀, 믿음, 구원, 삶이라는 4개의 주제를 통해서 청년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과 신앙관에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용한 파고를 일으킨다.
말씀을 듣고 배웠다면 그렇게 살아라! 말씀이 자기 삶과 일치되는 '말씀과 자기통합'의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연기(위선)의 삶일 수 밖에 없다. 538페이지의 다소 두꺼운 책장을 덮으며 저자의 일침이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진다.
존경할 만한 목회자가 없다고 아우성대는 이 세대 속에서 본서의 저자는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목회자 중 한분이라 생각된다. 그는 2018년 11월을 끝으로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경남 거창의 시골마을로 낙향했다.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 이재철을 잊어달라, 그것도 철저하게 잊어달라고 당부하며 마지막 고별 설교의 강단을 내려왔다. 하나라도 더 움켜쥐고, 더 높은 자리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 열병난 세대 속에서 저자의 행보는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크나큰 파장력으로 다가왔다. 4인의 공동 담임목회자를 위해 자리를 비우고 아름답게 퇴장한 삶, 그에 반해 철저히 버리는 삶, 철저히 낮아지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말년은 항상 추할 뿐이다.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과 여운이 그대로 살아있는 본서 한권이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의 충실한 마르테스(증인)이자 휘페르테스(종)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떠나는 저자의 뒷모습이 왜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받는 것인지 알 것 같다. 풍기는 향이 다른 사역과 삶을 살았고, 또 다시 결이 다른 삶의 모습으로 퇴장하는 저자의 삶 속에서 이 책에서 그가 말한 메시지의 진실성을 확증하게 된다. 서가에 꽂아두고 내 삶에 무엇인가 움켜쥐려는 추태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마다 꺼내볼 필요가 있는 매우 귀중한 책 중 한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