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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에이미 카마이클, 코리 텐 붐, 윌리엄 캐리

by 독서블로그123 2024.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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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카마이클

'믿음의 영웅들'시리즈 3번째 주인공은 19C 북아일랜드 출신의 개신교 여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에이미는 케직사경회를 통해서 이 땅에서 그녀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 후 일본 선교사로 헌신한 24세의 젊은 여성 에이미 카마이클은 15개월간 일본에 거주하다가 나중에 인도로 사역지를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단 한번의 휴가도 없이 55년간 인도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섬기는 사역을 행하게 된다.

 

당시 인도는 지금도 그렇지만 '카스트' 라는 독특한 신분 제도가 상존하는 사회였다. 4개의 신분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마치 조선시대 양반, 중인, 평민, 천민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초기 사회 조직 운영의 방편으로 탄생한 카스트 제도는 이후 신분 계급의 엄격한 차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존엄마저도 무시하게 되어지는 사회의 필요악과 같은 제도로 전락해버린다. 이러한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 있던 근대 인도 사회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파란눈의 독신 여성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성취하기 위한 일념으로 자신의 삶을 바쳐 인도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에이미 선교사가 사역하던 당시 20C 초 인도에서는 어린 아동들을 힌두사원에 바치는 악습이 횡행했었다고 한다. 딸들은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특히 정혼하지 못한 어린 소녀들은 힌두신에게 바쳐지는 사원창기가 되어 신과 결혼을 하고 성적인 착취를 당하는 끔찍스러운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지만 그러한 악습이 용납되는 사회였다. 또한 힌두교 문화권 안에서 자행된 또 다른 악습 중 하나는 바로 '사티' 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남편이 죽으면 살아있는 아내를 남편의 시신과 함께 산채로 화장시키는 일종의 순장이었다. 이러한 끔찍한 악습들이 성행한 인도의 힌두 문화권 안에서 서양 개신교 선교사가 사역할 수 있는 기반은 좁았다. 그러나 이곳에 젊은 독신 여성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이 찾아오고 동료 선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힌두사원에 바쳐지는 아이들을 구출하는 어머어마한 일들을 감당하게 된다.

 

인도의 지배적 종교인 힌두교 문화권 안에서 남성 선교사들도 쉽사리 시도할 수 없었던 이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사역을 여성 독신 선교사가 해낸 것이다. 두드러진 남성 우월주의 뿐 아니라 카스트 제도라는 오랜 시간 고착화되어버린 사회의 구조적 악과 모순,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회의 부조리한 행태 속에서 에이미는 오직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자" 를 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만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불굴의 용기와 믿음을 갖고 자신에게 맡겨진 어린 인도의 영혼들을 감싸 안았다.

 

그리하여 1951년 에이미 카마이클이 83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수백명의 아이들을 이러한 악습으로부터 구출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매진했다. 하나님께서 청년시절에 주권적으로 '가라!' 고 말씀하심을 확신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복음을 위해, 주님을 위해 던졌던 한 명의 연약한 여성 선교사에 의해 수많은 어린 영혼들이 육적인 생명과 더불어 영적인 생명을 얻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 힌두 보석들의 구출자...에이미 카마이클. 그녀는 가고 없지만 그녀가 남긴 위대한 선교의 족적들은 지금도 개신교 근대 선교역사에 있어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더불어 그녀는 근대 영국 선교역사에 있어서 탁월한 여성 선교사로 인정받는 몇 안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독자는 삶의 환경들과 정황들이 어렵고 힘들 때 눈을 들어 그분을 보았던 그녀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의 은혜를 이 책을 통해 가슴깊이 느껴 볼 수 있다.

 

코리 텐 붐

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나치 독일의 유대인 말살 정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의 삶의 대해서 소극적인 제약만을 가하던 나치 독일이 해를 거듭할 수록 유대인들에게 많은 규정과 법규를 만들어서 지키도록 강요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예상되었던 유럽내 유대인 말살정책이 공표되고 이제는 유대인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서 강제수용소로 이송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다는 것은 참혹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믿음의 영웅들 시리즈 4번째 주인공은 '코리 텐 붐' 여사이다. 그녀는 네덜란드의 작은 시계방을 운영하는 시계수리공의 딸로 태어났다. 전쟁이 유럽을 휩쓸고 있을 당시 중립을 지키고 있던 네덜란드도 나치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전 유럽에 선포된 유대인 말살 정책에 의해 네덜란드에 있는 유대인들도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리는 우연히 도망친 유대인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집을 개조하여 유대인들의 피난처로 제공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급기야는 나치 독일군에게 발각되고 유대인들과 함께 '라벤스부르크'라는 악명높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향한 꺽일 줄 모르는 믿음과 소망으로 동료 재소자들을 격려하고 돌보는 사람으로 있게 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연약한 여성 전도자의 삶이 많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부터 건져냈고 사람들에게 소망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 수용소에서 그녀의 가족들이 죽음을 맞이 하는 등의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자신 또한 악랄한 나치 독일 군인들에게 갖은 수모와 고통을 당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을 향한 코리 텐 붐의 믿음과 사랑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간다. 자신의 생명 조차 돌보기 어려운 이 참혹한 고통의 순간 속에서 코리 텐 붐은 다른 여성 재소자들을 복음으로 위로하고 소망함을 놓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는 삶을 살았다.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에 무사히 석방 된 코리는 그 후 수용소에서 자신을 신실하게 돌보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5천만명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의 사람들이 아돌프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지도자의 오판에 의해 희생되었다. 코리는 이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겪은 이 잔혹한 실상을 책으로 기록했다. 그녀의 첫번째 책 <죄수이지만 나는...>에 이어 <피난처> 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매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그녀의 명성은 그녀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가 전하는 이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서로를 미워하고 죽고 죽였던 전쟁의 아픔과 상흔을 간직한 수 많은 사람들이 용서와 회복, 치유의 은혜를 경험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극적인 대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전쟁이 끝나고 뮌헨의 어느 강연장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용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이 감동적인 강연을 마친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그런데 그 순간 코리의 혈관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 사람이 코리의 눈 앞에 서 있게 된다. 그는 바로 그녀가 라벤스부르크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여성 재소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안겨 준 악명 높은 나치 간수였다.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바라보며 코리는 수용소에서 죽어 간 자신의 아버지와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적개심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이윽고 코리의 입에서는 " 오! 하나님 제가 말한대로 행하게 하소서!" 라는 나지막한 기도와 함께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그 남자의 손을 맞잡고 그를 진정으로 용서해 주기에 이른다. 자신과 가족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강제 수용소의 나치 간수까지도 용서함으로서 그녀는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체험한 것이다.

 

참으로 감동적인 실화가 아닐 수 없다. 하루에도 몇번씩 내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과 태도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속좁은 마음을 가진 나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태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있어서 코리 텐 붐 여사가 행한 그 한 없는 용서의 행위는 우리에게 큰 모범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힘으로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온전한 용서와 화해를 실현할 수 없다. 코리는 바로 그것을 알았다. 진정한 용서와 용납함은 자신의 힘과 의지가 아닌 오직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그분의 사랑과 자비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일임을 말이다.

 

죽음의 공포와 견딜 수 없는 고통들, 그리고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둔운 좌절과 절망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식지 않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자신보다 더 힘든 연약한 자들을 복음으로 섬기며 급기야는 원수까지 용서하며 살다간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의 삶이 작은 어려움에도 낙심하고 절망하며 미움과 원한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세대의 모든이들에게 큰 힘과 격려로 다가올 것이다.

 

윌리엄 캐리

'믿음의 영웅들 시리즈' 5번째 주인공은 인도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 이다. 18C 중반 영국 국교회의 가정에서 태어난 윌리엄 캐리는 어린시절 불우한 가정 환경 가운데서 성장했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서 구두 제조공의 도제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구두 제조기술을 배우며 혼자 틈틈히 공부한 결과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불어, 독어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윌리엄의 하나님의 대한 사랑과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그가 침례교 목사가 되어 열방의 선교사로 나가게 만드는 계기를 가져오게 된다. 그 후 그는 영국 런던에 추후 '런던 선교회'가 되었던 해외 선교회를 창립하고 자신이 스스로 인도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떠나게 된다. 이로서 세계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가 탄생되었다.

 

인도 선교에 헌신한 그는 죽을 때까지 한번도 고향을 찾지 않고 오직 인도에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만 매진을 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헌신으로 인도에는 약 20여개의 교회와 선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는 그의 달란트 중에 하나인 언어번역을 통해서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등의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도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복음을 읽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의 사역 속에서 어려움과 낙담케 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윌리엄은 하나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오직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역에 자신의 삶을 과감하게 던진다.

 

특별히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일화는 윌리엄 캐리가 인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현지에 만든 인쇄소 화재 사건이다. 인쇄 중이었던 10가지 성경 번역본과 다국어 사전 초고, 각종 문법책들과 힌두교 종교서적에 대한 번역본과 해석집, 아시아 각국 언어들의 인쇄 활자와 같은 다양한 인쇄물들과 인쇄도구들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는 절망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인도 현지인들은 눈 앞에 까만 잿더미로 변한 인쇄물들과 인쇄소 건물을 한동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윌리엄 캐리와 그의 동료 선교사들이 이제 복음 사역을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윌리엄 캐리는 동료 선교사들을 바라보며 이 일로 주저앉을 수 없으니 힘을 내어서 다시 시작하자는 격려의 말을 던진다.

 

좌절과 낙심이라는 단어는 윌리엄 선교사에게만큼은 효력이 없었다. 인도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보급하고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그 구령의 열정과 긴급함이 그에게 화재로 인한 절망적인 순간에 주저 앉아 있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건강한 종말론적 사고 속에서 이들에게 지금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라는 복음의 긴박성이 당시 윌리엄이 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던 학교와 저 멀리 그의 조국 영국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각지에서 인쇄소의 재건을 위한 긴급 복구 재정들이 이어지는 놀랄만한 전화위복의 상황이 이어진다. 놀랄만한 것은 얼마나 많은 후원금이 쏟아져들어왔으면 이제 더 이상 후원금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야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차고도 넘침을 확인하게 된 순간이다.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제화공의 도제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다양한 언어를 익히고 마침내 침례교 목사가 된 윌리엄 캐리는 인생 그 자체로서 이미 고난을 헤쳐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누구도 인도 선교사로서 자원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신뢰하며 스스로 선교회를 조직하여 선교사로 헌신한 그의 삶은 신앙인으로서도 본이 되는 훌륭한 인생이었다. 오늘날 그의 이러한 헌신으로 수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자녀들이 먼저 죽고, 첫번째 아내가 정신질환을 앓는 등 그의 주변을 둘러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 조차도 윌리엄 캐리의 잃어버린 영혼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선교의 개념 조차도 없었던 당시의 우물안 개구리와 같았던 기독교 지도자들을 일깨우며 선교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임을 몸소 실천해 보였던 위대한 개신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의 삶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멈춰진 부르심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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