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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삼국지, 변신

by 독서블로그123 2024.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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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공명, 조조, 손권과 같은 중국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로서 유명한 <삼국지>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고전 중의 고전이며 불후의 명작이다. 보통 10권으로 구성된 나관중 원작의 삼국지가 있으나 내게는 중학생 시절 이문열 작가가 편저한 삼국지를 읽은 기억이 어렴풋 남아있다. 중국 한나라 말기 위, 촉, 오로 나누어진 제후들이 각기 천하를 통일하고 평정하기 위해 펼치는 대서사시는 그야말로 대작의 기품을 갖는다. 인간사 각축장의 민낯을 이 한 권의 책 속에 녹여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삼국지는 인류 역사 속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성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있는 탁월한 저작 중 한 권이다.

 

군웅할거의 시대 속에서 꽃 피는 영웅들 간의 의리와 사랑, 충절과 절개와 같은 덕목뿐 아니라 배신과 반목, 탐욕과 질시, 무지와 같은 부도덕한 인간 내면의 요소들이 마치 용광로와 같이 한데 어우러져 한편의 위대한 대작을 탄생시켰다. 이뿐인가! 병법서로서의 가치 또한 탁월하여 공격과 수비, 적을 유인하고 기만하는 등의 병서가 갖추고 있어야 할 내용들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아져서 읽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선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대작에게 있어 하나 아쉬운 점은 보통 10권의 원작이 가진 본서의 무게감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발톱 깎을 시간도 없다고 투정 부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무리 재미와 더불어 함의하고 있는 교훈과 지혜가 탁월하다 한들 10권의 원작을 앉아서 진득하게 완독할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삼국지의 제목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만 완독을 한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말이 의아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스타북스에서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를 출간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책을 펼쳐들고 오래전 읽었던 이문열 편저의 10권짜리 삼국지의 기억을 소환했다. 이 책의 특징은 빠른 사건 전개이다.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핵심적인 사건과 사상,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렇다고 중요한 사건들을 건너띄거나 빠뜨리지 않고 세심하게 짚고 넘어가기에 흐름이나 맥이 끊기지 않는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부터 시작해서 진나라의 천하통일까지 총 10개 챕터 550여 페이지, 전집에 비해서는 아주 라이트한 구성이지만 넣을 것 넣고 뺄 것 뺀 아주 알찬 구성의 삼국지이다.

 

시간과 재정이 넉넉하다면야 나관중 원작의 10권으로 구성된 전집을 사서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있어 본서 한 권만 읽어도 대략적으로 삼국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고 그 안에 담긴 주요 내용이 어떠한지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삼국지는 영웅호걸들의 기개와 의리, 충절의 멋이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깊은 감동을 느낀 대목이 있다. 유비가 조조의 급습을 받고 후퇴를 하는 상황에서 유비의 아내 미부인과 어린 아들 아두를 놓치게 된다.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포위된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유비의 명장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 아두를 둘러업고 적의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탈출한다. 그리고 그가 유비 앞에 당도했을 때 그 앞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내동댕이치며 자신의 아들 때문에 귀중한 장군을 잃을 뻔했다고 말하는 유비의 모습 속에서 섬뜩함과 동시에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자신의 아들보다도 더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그의 인덕과 인품에 깊은 감동이 몰려온다. 배신과 반목이 판을 치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부덕한 리더들이 들끓는 지금의 현대 사회에서 유비가 뿜어내는 영웅의 기풍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다.

 

책에서도 말한다. "삼국지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무지하고,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은 지혜와 간계, 술수가 영악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책을 한낱 처세술을 배울 수 있는 잡록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삼국지는 인간 군상의 모든 것을 담은 한편의 인간사 바이블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은 저작이며 동시에 인간관계의 깊은 의미를 내포한 한편의 철학서라고 평가해도 좋을 양서이며 고전이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 상대의 마음을 얻는 묘책, 기만과 책략의 적절한 사용,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구분하는 법, 탐욕과 허세에 대한 경계 등 어쩌면 이렇게 내용 하나하나가 21세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르침들인지 책을 읽는 내내 문득문득 소름이 돋곤 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다. 지금껏 시대를 뛰어넘는 수많은 고전들이 있었고 그러한 명작들이 베푸는 교훈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우리의 삶에 있어 대동소이한 상황 속에 적확성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겸허함으로 펼쳐보아야 할 위대한 고전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삼국지임은 하나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참으로 시대를 읽는 눈을 갖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단연코 독자의 서가에 꽂혀 있어야 할 저작 중 한 권이다.

 

변신

체코 태생의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독특한 태생적 이력을 가진 20세기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프란츠 카프카'의 명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개인적으로 그의 책을 쉽사리 접하지 못하던 중 존경하는 멘토 목사님께서 당신의 교회 고등부 학생들과 책 한 권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된 책이 오늘 소개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다. 인간 실존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갈구하는 실존주의 작가들의 저작이 가진 그 독특한 분위기가 카프카의 책 <변신>에서는 다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카프카의 대표작인 <변신>에서의 주인공은 '그레고르'라는 남성이다. 어느 날 자신의 방에서 눈을 떴는데 자신의 몸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딱딱한 등껍질과 불룩한 배, 징그럽게 움직이는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자신의 몸을 보며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했지만 이내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곧이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목격하게 되고 가족들은 큰 충격과 비탄에 빠진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어머니와 여동생 등 일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었던 주인공 그레고르의 벌레로의 변신은 가족들의 생계가 위태로워졌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들, 오빠가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그에 대한 걱정보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오직 가정의 편안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에 기인한 염려다.

 

그리고 마침내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짐이며 부담스러운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천덕꾸러기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기 전 가족은 그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제 그는 벌레가 되었고, 가족들에게는 말 그대로 벌레와 같이 해로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존재 자체의 무가치함은 그들에게 그레고르가 자신들의 아들이며 오빠라는 사실마저도 망각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가족들의 안정된 삶을 방해하는 존재로서의 그레고르에 대해 마침내 가족들은 큰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를 버리는 것! 결국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기 전 자신이 그렇게도 헌신적으로 섬겼던 자신의 부모와 여동생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고 소외되는 존재로서 남게 되는데...

 

본서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매우 흥미로운 카프카의 태생에 주목했다.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체코 태생의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너무나 독특하고 경계가 모호한 카프카의 배경은 그의 책 <변신> 속에 무형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녹아져있다. 그는 당시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과 혐오가 극에 달했던 시대를 산 인물이다. 유대인을 사람이지만 하나의 짐승이나 벌레와 같이 여기는 타자들의 부정적 시선이 팽배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분위기를 카프카는 모르지 않았다.

 

카프카의 실존주의적 작품세계의 배경, 특별히 <변신>은 바로 이 인간 존재에 대한 모호함을 드러낸다. 인간이지만 벌레인 그레고르라는 인물은 카프카의 내면의 의식세계 속에 잠재되어 있는 또 하나의 자아적 표상이다. 사회로부터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독일계 유대인, 아버지로부터 용납되고 수용되지 못하는 불완전한 아들 프란츠 카프카, 가족들에게 벌레로서 취급되어지며 버려지는 그레고르... 이들 모두가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모호함을 담지한 인물들이다.

 

더불어 카프카는 쓸모가 없으면 버려질 수도 있다는 효용적 의미로서의 인간 실존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기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득이 되며 효용적 가치가 있을 때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에야 많이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주어진다. 소설 속에서도 가정의 경제를 책임졌던 주인공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한 후 가족들에게 더 이상 경제적인 도움은커녕 해가 되고 짐이 되는 존재로서 철저히 소외되고 버려진다. 이것이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였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생각들은 카프카가 태어나 성장하면서 아버지와의 끝없는 갈등과 미움을 통해서 극대화되었고 그것이 자신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본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효용성을 요구했던 폭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신의 자아를 온전히 펼쳐 보일 수 없었던 이 억눌린 감정과 심리적 기제가 그의 작품, 특별히 <변신>과 또 다른 단편선 <판결>에 잘 드러난다.

 

소외된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 한편의 책 속에서 카프카가 살다 간 100년 전과 100년 후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절묘하게 오버랩되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끼친다. 쓸모가 없으면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이 미친 시대 속에서 인간 실존의 참된 모습은 무엇인가? 더 이상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벌레가 되었기에 아들이며 오빠인 주인공을 외면하는 <변신>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이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완전한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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