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관계의 어려움이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의 배경과 스토리가 다르기에 개개인의 개성과 성향, 성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우리 주변에는 만나면 함께 있고 싶은 따뜻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얼굴만 봐도 역겨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미스터리한 팩트를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너무나 따스한 성품을 가진 사람의 이면에 믿기지 않는 차가움과 건조함이 공존한다면 그 사실을 순순히 믿을 수 있겠는가? 반대로 주는 것 없이 밉고 그냥 이유 없이 진저리 나도록 싫은 끔찍한 사람들의 내면 안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따뜻한 인간미와 숨은 인품의 고결함이 고요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면 그 또한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내면과 속성에 대해 18세기 말 한 여류작가에 의해 흥미로운 소설로 탄생된 한 권의 위대한 고전 문학 작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18세기 영국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베넷 가문의 가장인 '베넷'과 그의 아내 '베넷 부인' 그리고 다섯 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장성한 딸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들이 사는 롱본 지역과 가까운 네더필드에 부유하고 잘생긴 상류층 가문의 청년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이사를 온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베넷 가문의 큰딸 '제인'과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빙리와 다아시를 알게 된다. 상류층의 품위와 품격을 드러내며 누구에게나 따뜻한 성품과 친절함으로 모든 이들에게 칭찬을 받는 빙리는 그야말로 훈남이며 전형적인 신사로서 모든 여성들의 흠모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의 친구 다아시는 빙리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높은 계급의 가문이었지만 자신의 가문이 가진 고결함을 뽐내듯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마치 깔보는 듯 무뚝뚝한 표정과 일면식 있는 사람 외에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조차 기피하는 차가운 인상의 인물이다.
이후 따뜻하고 자상하며 지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베넷 가문의 첫째 딸 제인과 역시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빙리는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빙리의 친구 다아시의 반대로 인한 것이었다. 자신의 착하디착한 언니가 상류층 부유한 가문의 훈남 빙리와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 다아시에 대해서 가뜩이나 오만스럽고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역겨운 귀족 다아시에 대해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분노의 감정을 품게 된다.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끔 만드는 고전 문학이 가진 매력이 대단하다. 사건이 중반을 지난 종반으로 치달을 때쯤 독자는 제인과 빙리의 결혼을 반대한 다아시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게 되면서 그동안 극중 인물 엘리자베스와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다아시에 대한 관점이 극심한 편견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위를 이용하여 악행을 일삼는 교만하고 염치없는 뻔뻔한 인간인 줄 알았던 다아시. 그러나 그의 진심을 발견하고 내면 안에 흐르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참된 마음의 소유자가 바로 다아시임을 알게 된 베넷 가문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연모하며 사랑을 고백했던 다아시에 대해 편견의 비늘을 벗기 시작하는데...
오만으로 대변되는 다아시와 편견으로 대변되는 엘리자베스의 대립 구도는 책이 가지는 메인 테마이다. 그러나 주의 깊은 독자라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두 사람 모두에게서 오만과 편견의 그늘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가진 엄청난 부와 가문의 명예를 업고 차갑기 그지없는 오만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던 다아시는 자신의 친구 빙리가 자신들과는 가문의 품격이 다른 중산층 베넷 가문의 천박함 속에 함몰되어 갈 것을 우려함으로써 친구의 결혼을 반대하는 편견을 보였다. 18세기 근대 유럽의 계급주의적 편견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다아시의 차가운 첫인상과 그가 행한 악행(사실은 그렇지 않은)의 소문을 듣고 그를 상류층 사람들의 오만스러움의 전형으로 여기며 극도로 경멸스럽게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하다는 오만스러운 망상에 기인한다.
책 한 권에 18세기 근대 유럽 계급주의에 의한 신분상의 차별,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비롯한 시대와 문화의 한 단면을 매우 절제된 언어의 방식으로 녹여 낸 본서의 가치는 탁월하다. 고착화되어버린 사회 시스템 안에 내재한 다양한 구조적 갈등은 전부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파생된다. 타자에 대해 내가 가진 신분의 높고 낮음, 빈부 여부를 통해 선을 긋는 모든 행위는 오만스러운 것이며 극심한 편견에 의한 병적 태도이다. 혹자는 본서가 연예학 개론의 고전이라고 평하였지만 단순한 남녀 간의 갈등, 화해와 공존을 말하는 핑크빛 소설이라고만 한정 짓기에는 책이 가지는 그 진중한 의미가 아깝다.
오만과 편견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성향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자웅동체와 같이 인간 내면 안에 동일하게 상존한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엃히고설킨 이 복잡다단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8세기 말 쓰인 고전 문학 작품 한 권이 던져주는 인상이 크고 깊다.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타자들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촌음 사이에 수십수백 가지의 편견을 머릿속에 주입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인적인 오만함을 갖고 타자들을 내 삶의 영역 밖으로 쉴 새 없이 밀쳐내는 데에 전력을 다한다. 책의 마지막 뚜껑을 덮으며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발견하게 되는 오만과 편견의 프레임을 장밋빛 소설 한 권에 담아낸 저자 제인 오스틴의 인간 본성과 시대를 읽는 혜안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책임 있는 독자라면 인간 본성에 코드화된 이 오만과 편견의 네거티브한 습성을 끊어내라고 요구하는 고전적 교훈을 겸손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저자 제인 오스틴이 미래의 독자인 우리에게 원하는 작은 바람이 아닐까?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날카롭고 정제된 문장이 마치 하얗고 파르스름하게 날 선 식도의 그것과 같이 문단과 문단을 넘나들며 글이 가진 그 원초적 기운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몇 안되는 작가로 꼽히는 '김훈'이 산문집 <연필로 쓰기> 이후 근 1년만에 장편소설로 독자들을 만났다. 김훈 작가의 글을 사랑하는 평범한 독자로서 항상 느끼는 것은 그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글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동경이 나의 심연에 정동으로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유난히도 빨리 찾아온 초여름의 어느날, 김훈의 신간 출판 소식을 접하고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이다. <칼의 노래>를 통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접했기에 2017년 소설로서는 <남한산성> 이후 뜸했던 그의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했던차였다.
그렇기에 코로나로 한참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 때 그의 출간 소식은 내게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작은 희열을 가져왔다. 책을 받고 속지에 인쇄된 저자의 친밀 서명을 응시하며 책내음을 들이킨다. 인쇄지에서 전해져오는 야릇하고 진한 잉크 냄새를 변태스럽게 흠향함과 동시에 그가 그려갈 이야기의 향연을 기대하며 첫 페이지를 연다. 책장을 넘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내러티브가 펼쳐진다는 사실은 독자에게 있어서 행운이자 한편으로는 상당한 모험일 수도 있는 경험이다. 문장은 여전히 살아서 치근덕대듯 꿈틀대고 있지만 지금까지 느껴왔던 김훈이 보인 집필의 전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초입부에서 강하게 느끼는 순간 기대감과 함께 출처를 알 수 없는 염려가 엄습했다.
어차피 픽션인 소설은 팩트보다는 글쓴이의 생각의 곡선을 따라가는 것이 더 매력적인 장르라는것을 알고 있지만 김훈이 이러한 작품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사와 공상이 만나서 탄생된 이름하여 '역사판타지' 소설이라고 표현한들 그의 작품에 대한 경의를 잃는 것은 아니리라. 역사적 배경을 깔았지만 실제로 없는 무형의 역사를 지면으로 소환해내어 육필로 꾹꾹 눌러 쓴 저자의 문학적 저력이 엿보인다. 더군다나 책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다. 옛부터 영특하다 여겨진 영물로서의 말(馬)을 전면에 내세워 말의 눈으로 본 인간 사회의 대소사를 지극히 절제되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냈다.
저자는 책의 전반 지면을 할애하여 소설의 배경을 멍석깐다.'나하' 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태고의 국가로서 북쪽 초나라와 남쪽 단나라가 존재했다.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초나라와 땅에 정착하여 흙을 먹고 살아가는 단나라는 분명 인류 문명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각기 다른 문명이 서로의 다름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피가 당기는 것과 같이 참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본성에 기인한다. 저자는 두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의 근간으로 삼지만 거기에는 전중반부터 시작되는 인류 문명 속에 깊이 관여했지만 그 태동은 알 수 없는 말(馬)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말(馬)이라는 짐승이 언제부터 인간에게 자신의 잔등을 허락했고, 인간은 어떻게 말(馬)을 문명의 중심축으로 끌어들였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말(馬)이 인간사의 굴곡진 일상 속에 깊이 관여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말의 역사를 찢고 침범한 것인지 그 진위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본서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은 인간과 말의 서사를 통한 문명과 야만의 민낯을 독자들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나라의 신월마 토하와 단나라의 비혈마 야백은 순수 혈통의 우수한 명마들이며 이야기의 중심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질성을 극복하지 못한 인간들은 죽고 죽이는 전쟁을 통해 야만과 광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폭력을 여과없이 목격한 말의 관점을 빌려 물고 물리는 아수라장 같은 인간사 각축장의 혼돈을 다소 거칠게 그러나 때로는 한없이 세밀하면서도 절제된 저자만의 명문으로 토해낸다. 문명은 길들여진 것이며 야만은 날 것 그대로의 비릿함을 전한다. 인간에게 자신의 등을 허락하지 않았을 때의 말은 야만 자체였으며 자신의 등에 인간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하면서 말은 문명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기에 저자는 문명과 야만의 충돌을 모두 다 지켜본 말(馬)을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운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써내려간 저자의 신작은 분명 또 하나의 한국 문학계에 일획을 긋는 소설로서 기억될 것이다. 본서는 <칼의 노래>와 같은 벼락같고 날카로우면서도 무섭게 절제된 명문보다는 시원의 그 알지 못하는 언어의 태고적 신비스러움이 더 많이 묻어나오는 저작이다. 저자는 간격과 공간마다 어휘와 문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읽는 이로 하여금 쉽사리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여리면서도 동시에 매몰찬 긴장감을 책의 말미까지 끈질기게 끌고간다. 이렇듯 작은 틈새 하나도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는 진득한 저력이 바로 작가 김훈만이 가진 그 무엇이다.
스러져가는 공상 속 두 나라의 저물어가는 운명의 끝단을 지켜보는 신월마 토하와 비혈마 야백의 관점을 통해 저자가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진의는 무엇일까? 흩어진 역사의 파편들을 마치 깨진 토판 조각을 줏어모아 엇댄듯한 이야기의 편린들은 지금의 문명에 대한 조소이며 경계이다.
부정하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세상에 대한 절절한 바람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공상의 나라 속으로 그를 침잠케했고, 한바탕 세차게 불어닥치는 비바람과 같이 흥망성쇠 문명의 한장면을 말(馬)이라는 영물의 관점으로 마음껏 비웃었다. 약육강식의 야만적 습성이 여전히 정상으로 여겨지는 이 비정상적인 세상에 대한 부정을 저자는 그나마 소설 속 두 문명의 대립과 스러짐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훌륭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숨겨진 진의를 고발하는 주된 장치로서 말(馬)은 그에게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도구다. 부인하고 부정하고 싶은 우리네 일상에 대한 애증이 들끓는다면 김훈 작가의 역사판타지 한편으로 이번 여름 우리네 삶의 틀어진 추를 의미있게 재정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엉덩이 탐정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한때 뽀로로에 열광했던 우리집 1호의 관심과 애정은 이제 엉덩이 탐정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1호를 따라서 2호 또한 마치 군중심리와 같이 엉탐의 매력에 빠져든다. 지난번 1권을 마르고 닳도록 읽은후 이번에 좋은 기회가 주어져서 3권을 읽게 되었다. 역시 책이 도착함과 동시에 폭풍독서를 시작한다. 옆에서 말을 걸어도 대꾸도 하지않고 초집중 모드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관심을 훔치는 엉덩이 탐정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먼저 아이가 혼자 읽은 후 나와 함께 앉아 읽는다. 지난 1권에 이어서 이번책도 <1화 함정이 가득한 정글>과 <2화 가방을 찾아라>2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엉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부모라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듯이 본서의 주인공은 엉덩이 탐정과 그의 조수 브라운이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이번책의 1화에서는 엉덩이 탐정의 아버지 '댄디'씨가 까메오로 출연한다. 고대 왕릉의 보물을 도굴하려는 도굴단에 맞서서 왕릉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엉덩이 탐정과 아버지 댄디 그리고 조수 브라운과 터프한 고양이 방울이가 활약한다. 왕릉의 보물을 노리는 3인조 혼성 도굴단은 마을 장로의 집에서 왕릉의 열쇠를 훔쳐 도굴에 나서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엉탐 일행의 활약은 어른인 내가 읽어도 제법 흥미롭다.
이어지는 2화에서는 신혼여행을 앞둔 신혼부부의 가방이 뒤바뀌는 소동이 일어나고 비행기 티켓이 들어있는 가방을 되찾기 위해 새신랑은 엉덩이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우여곡절 끝에 엉덩이 탐정과 브라운은 신혼부부의 가방을 찾게 되지만 그 가방은 중간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가방과 바뀌게 되고 그들이 찾은 가방 안에는 거액의 돈다발이 들어있을 뿐이다. 돈의 출처는 어디이며 신혼부부의 가방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신혼부부의 비행기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과연 엉덩이 탐정과 그의 조수 브라운은 사건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을까?
책이 가지는 독특한 점은 단순히 이야기만을 나열한 코믹북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의 스토리 중간중간 엉탐 일행이 만나는 사건 속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에 책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직접 선택권을 쥐어주며 문제를 풀어보라고 종용한다. 미로와 같은 곳에서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왕릉의 문을 여는 열쇠를 어떤 모양으로 맞춰야지 문이 열릴 것인가? 어지럽혀진 공간 속에서 주인공의 가방은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숨은그림찾기 등의 실제적인 퀴즈 문제는 어린이 독자들의 판단력과 창의력, 상상력의 확장을 독려하는 놀이 워크북으로서의 깨알기능도 감당한다.
또한 책의 곳곳마다 엉탐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색과 주황색 엉덩이 모양의 그림을 숨겨놓고 찾아보게끔 하는 문제는 어린이들의 주의집중력을 향상시키기에도 좋다. 이는 책을 허투루 대충 읽고 지나갈 수 없게 만드는 재미있는 장치가 아닐 듯 싶다. 더불어 이번에 발간된 3권의 경우 부록으로서 첫번째 사진에서와 같이 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사진의 장면이 다르게 보여지는 '포티큘러' 기능의 책갈피 겸 자를 함께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이런 작은 아이템 하나만해도 벌써 우리집 2호와 같은 작은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데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콩쥐팥쥐, 햇님과 달님이 된 오누이, 흥부와 놀부, 별주부전과 같은 전통적인 옛날이야기를 베이스로 한 이야기책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아이들의 책만 봐도 세대가 많이 바뀌었음을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고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먼저 접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효율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아이템은 역시 TV와 동영상 속에서 익숙하게 접한 주인공들을 종이책으로 소환해내는 일인 것 같다. 어린이들의 영원한 엉통령, 엉덩이 탐정을 고급스런 칼러 인쇄지에 깨끗하게 프린트함으로서 한편의 TV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애쓴 출판사의 기획력에 박수를 보낸다. 3권까지 출간되었으니 느낌으로는 앞으로도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은근히 기다려진다.